지하철에 버금가는 탁월한 운송능력에 더해 무소음, 무진동, 무매연 등 3무(無)를 실현할 수 있는 친환경 대중교통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
이에 발맞춰 최근의 전차들은 소비전력을 최소화하고 내부 인테리어를 쾌적화 하는 등 한차원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환골탈태하고 있다. 자료 제공 : 지멘스 Pictures of the Future
대중교통이라 하면 으레 버스, 지하철, 택시 등이 떠오른다. 여기에 하나를 보태자면 국내에서도 핫이슈로 떠오른 경전철이 있을 것이다. 경전철은 기존 지하철 등의 중전철과 구분되는 용어로서 전기로 구동되는 작고 가벼운 열차쯤 된다. 이러한 경전철의 한 종류로 노면 전차가 있다.
지하철처럼 전기로 움직이는 열차지만 지하가 아닌 지상에 레일을 부설, 버스처럼 일반도로를 이동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낭만적 유럽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번쯤 보았을 법 한 이 노면 전차가 최근 과거의 교통수단이라는 틀을 깨고 미래를 향한 힘찬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친환경고효율 교통수단
노면 전차는 19세기 말 도로교통 근대화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처음 실용화됐다. 이후 1980년대부터 유럽, 미국, 일본 등을 중심으로 활발히 도입·운용됐다.
1920년대 들어 기동성이 우수한 버스가 대중화되며 많은 국가에서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독일을 위시한 유럽 국가의 경우 노면 전차의 고성능 화를 추진, 지금까지도 대중교통의 한 축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노면 전차는 도심을 위한 최적의 운송시스템으로 꼽힌다.
탁월한 운송능력에 비해 건설비가 적게 들고 공사 기간도 짧다. 실제로 지하철과 비교해 건설비는 절반 수준, 공사기간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지하철 준공에 약 6 ~10년이 소요되는 반면 노면 전차는 2~3년이면 운행이 가능한 것. 수용 인원은 지하철과 버스의 중간 정도지만 많게는 500여 명까지 실을 수 있다.
현재 프랑스 니스에서 운행 중인 최신형 노면 전차는 약 220명의 승객을 5분 간격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평균속도는 시속 35.40㎞로 지하철보다 5㎞ 정도 빠르다. 노선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 시속은 70~80㎞에 이른다. 이들 장점을 능가하는 노면 전차의 최대 메리트는 단연 친환경성이다.
구동력을 전기에서 얻기 때문에 소음, 진동, 매연이 전혀 없다. 지구온난화와 화석연료 고갈의 위기에 처해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노면 전차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밖에 부수적 이점도 많다. 노면 전차는 높이가 도로와 거의 비슷해 저 상버스처럼 타고 내리기가 쉽다.
기존 도로의 노면 위에 철로를 만들어 운행 하는지라 별도의 노선을 새로 구축할 필요가 없으며 다른 교통수단으로의 환승에도 매우 유리하다. 이는 특히 고령화 사회에 더욱 안성맞춤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에 힘입어 2011년 현재 전 세계 60여 개국 750여 개 노선에서 노면 전차가 운행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만 20여 개 노선이 있다. 노면 전차 운용국가들은 교통 혼잡과 석유 위기의 해법으로 오래 전부터 노면 전차에 주목해 왔으며 최근에도 잇따라 주요 도시에 관련 노선을 개통하고 있다.
공조 시스템의 최적화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노면 전차는 한층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변신을 모색 중이다. 전력 소비량을 줄이는 동시에 차량 내부를 보다 쾌적하게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속속 수행되고 있는 것. 그중에서도 전차(탱크)의 나라라 할 수 있는 독일의 관심은 지대하다.
일례로 독일의 전기전자기업 지멘스는 노면 전차의 쾌적함을 유지하면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노면 전차의 에너지 소모량 중 30~40%가 냉난방 환기시스템에 의한 것임을 감안, 이의 절감 방안을 강구 중이다. 지멘스 연구팀은 최신 노면 전차에 채용되는 공조 및 환기시스템이 연간 약 10만kWh의 전력을 소모하고 있는 데 이를 최소 10% 이상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 시내를 운행하는 300대의 노면 전차들이 각각 이 정도의 전력만 아낄 수 있어도 연간 3,000kWh의 전력 소비량 절감이 가능하다. 이는 1,200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그렇다면 에너지 효율적이면서 비용 증가를 막고 승객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공조 시스템 개발 방법은 무엇일까.
지멘스의 대중교통 시스템 전문가 발터 쉬트러클 박사는 여러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있지만 이산화탄소 센서를 이용하는 방법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 방식은 사람이 숨을 쉴 때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는 점에 착안했다. 센서를 통해 전차 내의 이산화탄소 수치를 분석, 탑승자 수를 계산함으 로써 그에 최적화된 공기를 정확히 공급하는 형태다.
쉬트러클 박사는 이렇게 하면 불필요한 전력 사용을 최소화 하면서도 승객 불편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미래형 노면 전차와 관련 "고효율의 공조 및 환기 시스템과 경량화 설계, 에너지 저장 장치가 대세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중 에너지 저장 장치는 제동시 발생하는 열에너지와 공조시스템의 폐열을 수집해 전력으로 변환한 뒤 열차 구동에 이용하거나 전력망으로 되돌려 보내 다른 노면 전차가 사용토록 하는 장치다.
이밖에 쉬트러클 박사는 전차 내부의 조명으로 에너지를 절감하는 아이디어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차가운 색의 조명을 보면 체감온도가 2℃ 가량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LED를 활용해 필요에 따라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의 조명을 번갈아 비추면 적잖은 에너지 절약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기후 역학실험 시뮬레이션
전문가들은 또 냉난방 시스템 가동시 적용할 수 있는 에너지 절약 개발을 위해 기후역학 실험을 실시하고 있다. 기후역학 실험실 내의 전차와 일반적 운영 환경에 있는 전차 사이의 에너지 균형을 측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데이터는 다양한 주행노선에서 노면 전차의 열거동(thermal behavior)을 시뮬레이션 하는 프로그램에 입력되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공조 시스템을 최적화할 수 있다.
빈에 위치한 레일 테크 아스널(Rail Tec Arsenal, RTA)이 바로 이런 실험실이다. 이 시설의 가상 기후 공간은 노면 전차 전체를 극한의 기상 조건에 노출시킬 수 있다. 거대한 회전장치가 기류를 만들고 강력한 할로겐램프는 무더운 여름을 연출한다. 습도를 조절, 비와 눈이 오는 악천후 상황도 재연할 수 있다.
지금껏 이곳에서는 노면 전차를 서로 다른 속도로 주행시키는 등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차의 속력이 빠를수록 외부로 빠져나가는 열도 많아진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또한 좌석에 열선을 깔아 놓은 후 승객의 체온과 승객 수의 변화를 알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전차 내·외부의 온도, 풍속, 일조량, 공기조화, 환기장치의 전력 소모량 등을 끊임없이 모니터링 했다.
RTA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그레고르 리히터 박사는 "이 과정을 통해 처음으로 개별 시스템이 사용하는 에너지량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착안하기도 했다.
그는 "가끔 전차 내부의 온도가 기준치보다 더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에어컨 시스템이 차량 내 온도가 너무 낮다고 인식할 때까지 가동되기 때문"이라며 "조절 소프트웨어를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년 5월 이와 관련한 모든 테스트를 마친 친환경 노면 전차가 6개월간의 현장 평가를 위해 빈 시내에서 정기 운행에 들어갔다. 이 기간 중 차량에 장착된 센서는 하루 24시간 데이터를 수집했으며 광전자 센서는 각 역의 승하차 승객 수를 기록했다. 승객이 느끼는 쾌적도는 온도, 공기유속, 이산화탄소의 양을 분석해 측정했다.
이처럼 현장 실험에서 얻은 데이터는 다양한 실험 소프트웨어를 터널, 정거장, 승객수 변화 등의 조건에 맞춰 정확히 시뮬레이션 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완성된 소프트웨어로 노면 전차를 시뮬레이션하면 에너지 사용에 대한 영향이나 갖가지 에너지 절약 아이디어를 적용했을 때 고객들의 쾌적도를 계산할 수 있다.
쉬트러클 박사는 "핵심은 모두가 눈치 채지 못하게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라며 "가능한 모든 에너지 절감 방안을 한 데 모으면 노면 전차의 에너지 소비량은 2030년께 지금의 절반으로 낮아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녹색성장의 새로운 동력
이런 노력들에 힘입어 더욱 다채로운 미래형 노면 전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전력을 공급하는 기존의 고압가선 대신 배터리를 동력원으로 쓰는 '무가선 노면 전차'를 들 수 있다.
이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쓰이는 리튬배터리를 주 동력원으로 사용, 노면 전차의 3무(無) 효과를 유지하면서 고압가선 인프라가 필요 없어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또 한 고압가선 노면 전차 대비 10% 수준의 에너지 절감이 가능하며 제동시의 열에너지를 재활용해 에너지 효율을 30% 이상 높일 수도 있다.
이러한 무가선 노면 전차는 현재까지 프랑스 니스에서 운용 중인 것이 유일하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세계 각국에서 관련기술 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국내 역시 작년 한국철도기술연구원 (KRRI)이 1회 배터리 충전으로 25㎞ 이상 운행할 수 있는 360억 원 규모의 무가선 노면 전차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KRRI는 기존의 철로와 유가 선 구간도 운행할 수 있도록 이를 하이 브리드 형태로 개발할 계획이며 내년 중 시범운행을 거쳐 2013년 상용화하는 것이 목표다. 최근에는 또 '바이모달 트램(Bimodality Tram)'이라는 신개념 노면 전차도 등장했다. 이는 지하철과 버스의 장점을 융합한 것으로 버스처럼 일반 도로를 달리는 동시에 지하철처럼 전용 궤도에서 자동 운전이 가능하다.
도로에 매설된 자석이 레일 역할을 하 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전용 차선을 달리는 기존 버스와 별 차이가 없다. 수용 인원은 기존 노면 전차보다 월등히 많은 2,000~5,000명 정도며 건설비가 저렴하고 건설기간도 1~2년이면 충분하다. 다만 연료는 전기와 압축천연가스(CNG)를 함께 사용한다.
KRRI가 2003년부터 이의 개발에 착수했고 2009년 밀양에 시험선을 운행한 바 있다. 최근에는 부천 등 지자체가 바이모달 트램도입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덧붙여 바이모달 트램과 유사한 '트 램-트레인'도 기술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이 역시 도심 내 선로에 더해 기존 철도에서도 운용될 수 있는 노면 전차의 일종으로 최고 속도가 100㎞에 이른다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노면 전차는 끊임없이 일신 우일신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녹색성장의 새로운 동력원으로서 노면 전차의 부활에 귀추가 모아진다.
국내 노면 전차 도입 열기 확산
우리나라에서는 1898년 서울에 처음 노면 전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동안 시민들의 발 역할을 해왔던 노면 전차는 광복 이후 자동차를 필두로 한 교통량 증가로 인해 지금은 전량 폐기처분된 상태다. 경전철 열기에 따라 국내에도 다시금 부산-김해를 비롯해 10개 노선에 경전철이 도입되고 있지만 이들은 모두 고가나 지하를 주행하는 AGT(Automated Guideway Transit)나 모노레일 형식일 뿐 노면 전차는 아니다.
하지만 올해부터 지방자치단체들에 의해 노면 전차 도입이 속속 추진되고 있다. 한때 유행처럼 AGT나 모노레일 건설을 표방했지만 경전철 보다 비용과 소음, 매연 등에서 비교우위를 지닌 노면 전차에 눈을 돌리고 있다. 그 선두는 수원시다.
올해 초 염태영 수원시장이 오는 2014년까지 노면 전차의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 염 시장은 또 이미 유럽 노면 전차의 현지 벤치마킹을 끝냈으며 올해 중 사업타당성 평가를 마치겠다고 말했다.
수원시는 이번 발표와 관련 수원역과 수원 화성행궁을 잇는 노선에 1차적으로 노면 전차를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울산이 2015년까지 노면 전차 운행 계획을 천명하는 등 약 10여 개 지자체가 노면 전차 도입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낸 상태다. 이에 따라 10여 년 이후에는 국내에서도 도심 곳곳을 누비는 노면 전차를 만나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박소란 기자 psr@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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