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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과학은 벌집을 좋아해

달콤한 꿀이 가득한 벌집을 쉼 없이 들락거리는 벌들. 꽃이 피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빙글빙글 돌다가 꽃가루와 꿀을 물물교환한 후 달콤한 꿀이 가득한 벌집으로 찾아든다. 생명체에게 안식처는 중요하다.

때문에 모든 생명체는 제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집짓기를 한다. 이중 독특한 육각형 구조를 지닌 벌집은 건축물은 물론 노트북, 포뮬러원(F1) 머신에 이르기까지 우리 일상생활에서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첨단과학이 벌집구조를 이토록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료제공: 한국산업기술진흥원 기술과 미래
글_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bluesky-pub@hanmail.net

공간 활용도 만점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에 의해 설계돼 있다. 벌집의 육각형 구조는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구조다. 동시에 가장 균형 있게 힘을 배분하는 안정적 구조이기도 하다. 정육각형 모양의 구조물은 평면에 서로 붙여 놓았을 때 변이 맞닿아 있어 빈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삼각형, 정사각형도 틈이 생기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삼각형의 경우 벽면을 이루는 재료가 많이 필요하고 공간도 좁다. 또 정사각형은 외부의 힘이나 충격이 분산되지 않아 쉽게 비틀리거나 찌그러져 변형되기 쉽다.

반면 벌집의 완벽한 정육각형 구조물은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끄떡하지 않을 듯 튼튼해 보인다. 실제로 속이 빈 정육각형은 외부의 힘이 쉽게 분산되는 구조여서 견고함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수학적으로 둘레의 길이가 일정할 때 넓이가 최대가 되는 도형은 원이다.

따라서 만일 꿀벌이 공동생활을 하지 않고 한 마리씩 독립생활을 했다면 당연히 원기둥의 집을 짓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생활을 하는 꿀벌들에게는 동일한 양의 재료를 사용해 최대 넓이를 얻는 일이 중요하다. 한 개당 넓이는 원이 가장 넓지만, 원을 여러 개 이어붙이면 사이사이에 못 쓰는 빈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공간을 활용할 수 없다.

그런데 정육각형 벌집은 벌집 무게의 무려 30배나 되는 양의 꿀을 저장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간 활용도가 탁월하다. 벌들이 정육각형을 고집하는 이유가 바로 이 같은 경제원칙을 본능적으로 터득한 결과가 아닐까.

건축가들의 오랜 친구
벌집구조의 신비는 2000년 동안 풀리지 않고 있다가 1965년 헝가리의 수학자 페예시토트에 의해 수학적으로 증명됐다. 변이 곧은 요철형 다각형 가운데 정육각형이 가장 효율이 높은 도형임을 길고 복잡한 수식을 사용해서 밝혀낸 것. 비록 꿀벌이 수학적 계산을 통해 집을 지은 것은 아니겠지만 자연계는 이렇듯 가장 수학적인 법칙을 따르고 있다.

이런 독특한 장점 때문에 벌집은 오랫동안 건축가들의 주요 연구 대상이었다. 튼튼한 구조물을 만들 때 그 내부를 육각형 구조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벌집 구조물로 언급되는 건물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어반 하이브(Urban Hive)’ 다. 도심 속 벌집을 의미하는 이 건물은 17층 70m 높이의 콘크리트 외벽에 지름 1m 가량의 둥근 구멍 3,371개가 규칙적으로 뚫려 있어 건물의 이름처 럼 벌집을 연상케 한다.

사실 콘크리트는 그 자체의 중량이 무겁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노출된 콘크리트 벽이 70m에 달하는 건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어반 하이브 같이 고층 콘크리트 건물을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벌집 구조에 있다.

건물의 뼈대는 철근을 육각형으로 정밀하게 엮어 제작했다. 철근이 삽입되면서 전체 하중이 늘어나는 것은 외벽에 구멍을 뚫어 콘크리트의 양을 줄이는 형태로 해결했다. 이 구멍은 창문의 역할도 겸한다. 외벽에 뚫은 구멍이 건물을 더 튼튼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 셈이다. 벌집 구조의 효용성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어반 하이브는 이미 강남을 넘어 서울의 명소가 됐다.





F1 레이서의 안전지킴이
한편 벌집 구조는 고속열차의 충격흡 수장치를 비롯해 제트기, 인공위성 등 가벼우면서도 튼튼해야 하는 기체(機 體)에도 많이 응용된다.

일례로 자동차에 범퍼가 있듯이 KTX의 운전실 앞부분에 위치한 동력차에는 벌집구조로 형성된 고성능 충격흡수장치가 마련돼 있다. 허니 콤(Honeycomb)이라 불리는 이 장치는 알루미늄 합금 소재로 제작됐는데 충돌사고 발생 시 충격에너지의 최대 80%까지 흡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벌집 구조가 뛰어난 완충작용을 해 승객의 안전을 높여주는 것이다.

시속 300㎞ 이상의 속도로 질주하는 포뮬러원(F1) 경주용 자동차, 즉 F1 머신 역시 벌집 구조가 레이서의 안전성 제고에 혁혁한 기여를 하고 있다. 사실 F1 대회에서 사고는 그리 흔한 편이 아니다. 하지만 한번 일어나면 보는 이들을 아연실색케 할 만큼 충격적이다.



마치 총알을 맞은 과자처럼 차체가 산산조각 나곤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경우 그런 머신 속에서 구출된 레이서들은 멀쩡히 일어나 관중에게 손을 흔들며 자신의 건재를 알린다.

이는 F1 머신의 운전석에 그 어떤 기계장치보다 확고한 안전기술이 탑재돼 있기 때문이다. 운전석 전체를 하나로 일체화한 모노코크(monocoque) 방식으로 설계해 물리적 충격의 대응력을 높인 것. 특히 지구상에서 중량 대비 강도가 가장 센 육각형 벌집 구조의 알루미늄 패널에 탄소섬유를 코팅한 소재로 자체를 설계, 내구성을 극대화했다.

구체적으로 자체의 패널은 두 장의 탄소섬유판 사이에 벌집모양의 알루미늄판을 샌드위치시켜 만든다. 이 특수 합성물질의 두께는 3.5㎜에 불과하지만 일반 철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견고함을 발휘한다. 이에 힘입어 F1 머신의 운전석은 윗면 7.5톤, 측면 3톤의 충격에도 끄떡없다. 벌집구조의 능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사실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같은 이유로 벌집구조는 재료공학자, 그중에서도 항공기 구조 연구자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항공기의 중량을 줄이고 재료를 절약하기 위해 구조물 자체에 벌집구조를 적용하고 있는 상태다. 이 구조물은 속이 비고 두 끝이 금속관으로 고정돼 있기 때문에 속이 비어 있지 않은 구조물과 비교해 강도가 높고 중량이 가벼우며 소리나 열을 격리시키는 효과도 일품이라고 한다.

내구성 으뜸 노트북
6.5m 대형망원경을 제작할 수 있는 비법도 벌집 구조에 있다. 지름 6.5m의 대형거울은 두께가 적어도 1m 이상이라야 중력에 의해 휘거나 뒤틀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만든 거울의 무게가 약 165톤이나 된다는 데 있다. 망원경의 거울은 순간순간 빠르게 움직여 천체를 추적해야 하기 때문에 무거운 중량은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이의 해결 방안으로 거울의 뒷면을 벌집 모양으로 파내어 구조물의 견고성은 유지하면서 중량을 줄이는 기술을 채택한다. 또한 거울은 열을 받으면 팽창하고 식으면 수축하는데 벌집구조 속으로 일정한 온도의 공기가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 이를 막는다.

벌집 구조가 가진 막강 위력의 혜택은 노트북도 누리고 있다. HP가 출시한 ‘엘리트북’이 그 실례다. 이 제품의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강력한 내구성이다. 마그네슘 합금을 사용한 엘리트북은 우주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소재와 소재 사이에 벌집 구조물을 넣었다. 때문에 자칫 실수로 떨어뜨리더라도 벌집 구조가 충격을 흡수, 고장 위험을 줄여준다.

덧붙여 나노크기의 수많은 벌집 구멍은 반도체 소자가 차지하는 공간인 50나노미터(㎚)보다 훨씬 작기에 많은 양의 반도체 소자를 심을 수 있어 반도체의 집적도 향상을 꾀하는 부분에도 상당한 기여가 예상된다.



육각형 벌집구조는 지구상에서 중량대비강도가 가장 뛰어나다.

기저귀에서 가구까지
한편 벌집 구조는 금속이 아닌 목재 가구에도 접목된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이태리 가구 중에서도 명품가구의 대명사로 주목받는 몰테니의 제품에 벌집 구조가 사용된다.

이 회사는 장식적 요소를 절제한 디자인으로 인기가 높지만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첨단 기술력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가운데 최근 건축 재료인 초경량 시멘트와 벌집 모양의 알루미늄을 처음으로 가구 재료로 활용, 나무 형태의 변형을 막음으로써 내구성을 높이는 시도를 했다. 책장이나 옷장의 몸통에 벌집 구조의 알루미늄을 넣게 되면 나무의 변형을 막아 내구성이 높아진다는 과학적 사실에 주목한 결정이다. 지금은 이러한 공법이 가구업계에서 아주 널리 쓰이고 있다.

요즘에는 아기들의 기저귀에까지 육각형 벌집 구조가 모습을 나타낸다.

기저귀가 뭉치면 아기들의 움직임이 불편하기 마련인데 흡수체를 벌집 구조로 촘촘하게 이어서 배치하는 방법으로 흡수체의 흐트러짐을 막는다. 그 결과, 소변 흡수력이 향상될 뿐만 아니라 뭉침이 줄어들어 아기들의 피부 보호에도 도움을 준다.

이렇듯 구조 공학적으로 볼 때 육각형이라는 빼곡한 방들의 벌집 배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효율적 시스템이다. 자연의 빼어난 솜씨에 그저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을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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