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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값이 금값 된다?

SEAWEED SEED WARS

2012년 해조류 종자 전쟁이 시작된다.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은 2012년부터 해조류를 포함해 개발된 지 25년 미만의 모든 종자를 보호대상으로 지정했다.
UPOV의 이 같은 행위는 각국이 등록한 식물 신품종에 대한 지적재산권, 즉 법적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다. 이제 특정 종자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자료제공_한국산업기술진흥원 기술과 미래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bluesky-pub@hanmail.net

원래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대상은 공산품에 한정돼 있었다. 그러다가 딸기, 키위, 장미, 국화 등 일부 농작물과 꽃으로 적용대상이 확대됐다. 그리고 UPOV의 이번 조치로 인해 이제는 바다에서 생산한 해조류들에도 예외 없이 품종 사용료를 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김의 20%가 일본 품종
해조류를 비롯한 모든 종자의 수입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는 원칙은 우리나라처럼 영세한 양식업계에서는 꽤 충격적인 일이다. 특히 김 양식업자들에게는 그 파장이 매우 크다.

전국 최대 수산 규모를 자랑하는 전남 지역만 해도 김과 미역, 다시마 등 대다수 해조류를 일본 품종에 의존한다. 이는 전국적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양식되는 김 중 20%가 세계 최대 김 생산국인 일본의 품종이다.

밀물과 썰물이 만나 천혜의 김 양식 환경을 갖춘 김의 명산지 낙동강 종묘장도 일본산 종자와 국산 종자를 섞어 양식에 사용하고 있다. 왜 굳이 일본산을 섞는 것일까. 달달한 끝맛과 듬성듬성한 조직이 특징인 돌김을 예로 들어보자. 돌김은 오직 돌김 종자만 가지고 양식하면 입천장이 벗겨질 정도로 거친 제품이 나온다.

그래서 보통은 부드러운 일본산 방사무늬김 종자와 섞어 만든다. 분명 같은 돌김이지만 어떤 것은 부드럽고, 어떤 것은 뻣뻣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방사무늬김은 현재 한국, 일본, 중국 등 주요 김 생산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있는 김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무려 60%를 차지한다.

이 김의 최대 장점은 강력한 번식력에 있다. 서식 조건이 변하면 그에 맞춰 형태를 변화시키며 살아가는 등 환경적응력이 뛰어나 양식용 품종으로 제격이다. 질기면서도 부드러워 삼각 김밥이나 일반 김밥용으로 인기가 높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김의 종류는 약 140 여종. 이 중 우리나라에서는 20여종이 생산된다. 이들 거의가 양식이며 자연산은 드물다. 그렇지만 국민들 대부분은 김을 토종식품으로 여긴다. 김의 역사가 그만큼 오래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싼 로열티를 지불하면서까지 굳이 김 종자를 수입해야 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해조류 확보 경쟁
우리나라의 해조류 품종 개발 기술은 일본보다 뒤떨어져 있다. 우리는 약 26만점의 종자를 보존, 세계 6위의 유전자원 보존국가로 이름을 올렸지만 해조류 유전자원을 체계적으로 보유· 관리하고 있는 기관은 국립수산과학원 산하 해조류바이오연구소가 유일하다.

이곳에서는 현재 김 117 계통주를 위시해 미역, 다시마, 곰피 등 총 136 계통주를 확보해 보존·배양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자생하는 해조류는 800여종에 이르며 지역별로 고유 특성을 가진 토종자원의 존재를 고려하면 앞으로 5,000 계통주 이상의 유전자원을 더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 해조류는 일반 식물을 보관하듯 건조시켜 냉동·냉장 보관하는 것이 아니다. 물속에서 살아 있는 상태로 종자를 보관해야 하는 탓 에 전문지식 없이는 유지 자체가 어렵다. 또 육상식물에 비해 바다생물의 씨앗은 연구가 더 어렵다고 한다. 생장 환경이 바다인지라 수온이나 빛, 다른 생물들과의 관계에서 훨씬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해조류뿐 아니라 어패류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이제 대륙에서는 식량과 자원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그래서 해양으로 눈을 돌려 해조류의 계통주 확보 경쟁에 매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종자 연구가 없으면 식량도 없고, 식량이 없으면 외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무단 배양 금지
이 시점에서 잠시 용어를 정리하고 넘어가자. 씨앗은 땅 위에 사는 고등식물에 쓰는 말이고, 고사리 같은 하등식물은 씨앗 대신 포자라는 단어를 쓴다. 이것이 바다로 가면 또 달라진다. 김은 '사상체', 다시마는 '배우체', 모자반은 '유배'라고 불린다. 이는 생식 방법이 다르기 때문인데 넓은 의미에서 이들 모두가 결국 씨앗이라 할 수 있다.

김의 씨앗인 실 모양의 사상체를 키우기 위해서는 굴 껍데기가 이용된다. 김 양식을 하려면 가장 먼저 굴 껍데기에 사상체를 붙이는 작업을 해야 한다. 벼를 파종하듯 김의 씨앗을 뿌리는 셈이다. 그러면 사상체가 굴 껍데기의 진주층을 서식처로 삼아 세포분열을 하며 이때를 '패각 사상체(채묘용 종자)'라 한다. 이쯤 되면 보통 지름 1㎝ 정도의 군체를 형성한다.



양식장에서는 8월 말이나 9월 초쯤 이 사상 체를 모내기하듯 김발에 옮겨 심는다. 김발은 다시 얕은 바다에서 깊은 바다로 옮겨져 본격적으로 김을 키운 뒤 40여일 경과 후 찬바람 부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수확을 하게 된다.

사실 김은 수조에서 무제한 배양이 가능하므로 매번 종자를 구입할 필요가 없다. 사상체는 번식률이 좋아서 적당한 온도와 영양이 공급되면 쉽게 양을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처음 한번만 종자를 구한 뒤에는 양식업자들 스스로 배양해 쓰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이런 무단(?) 배양이 어려워진다. 지금처럼 마음대로 사상체의 양을 불려 사용하면 그에 따른 벌금을 물어야 한다.

한국은 지난 2002년 1월 50번째 UPOV 회원국이 됐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해조류 종자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로열티를 적용받지 않아 무관심과 무지로 일관해왔다. 어업인들 역시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다. 따라서 누가, 어디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김 종자를 가지고 오는지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종자의 출처에 더해 국내산과 일본산 종자가 어떤 비율로 김 양식에 활용되고 있는지의 사용 비율 또한 통계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 까닭에 수입 해조류 종자의 로열티로 우리 나라가 연간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얼마나 될 지도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다. 어림잡아 35억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종자 연구가 없으면 식량도 없다. 그리고 식량이 없으면 외국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국내산 김 종자 확보
사실 이는 우리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니다. 다른 국가들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따라서 해조류에 대한 로열티 문제나 유전자원 확보는 다른 국가에서도 지대한 관심사다. 더구나 최근에는 지구온난화 등으로 해조류 자체가 사라지는 사례가 많아 토종 해조류 종자의 보존과 신규 종자의 개발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해조류바이오연구소에서도 여러 종자를 교배해 새로운 품종의 개발이 한창이다. 올해 신 품종 출원될 예정인 연지졸방참김과 녹두졸방 참김이 그 실례다.

방사무늬김을 대신할 수 있는 김밥용 김도 연구 중이다. 대표적인 게 버들참김.

이 김은 우리나라 주요 양식 종인 참김을 바탕으로 다른 품종과 교배해 탄생한 신품종이다. 참김 특유의 향과 부드러움을 지니면서도 성장 속도가 빨라 대량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흠이 있다면 번식력에서 방사무늬김보다 떨어진다는 점이다. 버들참김 양식장에 방사무늬 김이 조금이라도 침투해 온다면 꼼짝없이 자신의 자리를 내줘야 하는 신세다. 종국에는 양식장 전체가 방사무늬김으로 탈바꿈돼 버린다.

결과적으로 강한 번식력에 매료된 김 양식업자들이 방사무늬김 도입을 확산한 것이 본의 아니게 자연 상태의 토종 김들이 우리 바다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만든 격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국내산 신품종 개발에는 민간 기업도 동참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전남 해양수 산과학원과 손잡고 김의 원재료인 원초 확보에 나서, 올 3월쯤 순수 국내산 종자로만 만든 최초의 김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는 해외에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는 국내산 1호 김 종자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며 그만큼 해조류 분야의 로열티 절감 효과도 가져오게 된다.

아직 해조류의 유전자원 확보는 세계적으로 시작 단계다. 따라서 서둘러 준비한다면 우리나라도 종자전쟁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바다 식량 자원의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삼각 김밥을 로열티 없이 먹게 되기를, 그래서 김값이 절대로 금값이 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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