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옥시텍이라는 기업이 유전자 조작(genetically-modified, GM) 모기를 이용해 이처럼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드디어 인류가 과학의 힘을 통해 모기에 물리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날이 온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전자조작식품(GMO)이 그러했듯 유전자 조작 생명체가 생태계에 가할지 모를 치명적 위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모기를 제거하려고 생태계 파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대가를 지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한여름 밤의 흡혈귀
매년 여름이면 찾아오는 불청객. 여름밤의 작은 흡혈귀. 그렇다. 이는 모기를 지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모기에 대한 경계심이 비교적 많이 희석됐지만 50~60년대의 모기는 매년 수천명을 일본뇌염에 감염시켜 40% 수준의 높은 치사율을 보였던 무서운 존재였다. 그리고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보건·의료시스템이 열악한 저개발국에서는 지금도 악명을 떨치고 있다.
국내에선 거의 사라진 말라리아만 해도 전 세계에서 매년 2억1,000만명 이상이 감염돼 65만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그 대다수는 아프리카의 어린이와 임산부들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매 30초마다 한 명의 어린이가 말라리아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최근 발표된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고서에 의하면 아시아에서도 지난 2010년 인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미얀마, 파푸아뉴기니 등지에서 3,000만명이 감염돼 4만 2,000명이 숨졌다.
일본뇌염과 말라리아 외에도 모기가 전파하는 치명적 질병은 뎅기열, 황열병, 사상충증, 상피병 등 부지기수다. 때문에 모기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가히 막대한 수준이다. 뎅기열을 예로 들면 매년 5,000만명 ~1억명이 감염돼 2만2,000명이 숨지는 것으로 WHO는 추산한다. 이를 통해 유발되는 경제적 피해는 환자의 간호와 치료, 전염 예방 및 확산 방지 등에 투입되는 직접 비용만 50억 달러에 이른다. 한화로 환산하면 5조원을 훌쩍 넘어서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모기가 속한 곤충이라는 생물군은 '지구의 지배자'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환경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최초의 곤충이 등장한 시점은 약 4억년 전으로, 세 차례의 대멸종을 견뎌내고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화학 살충제가 대중화되며 모기는 인간으로부터 전방위적인 화학전 공격을 받았지만 승리는 항상 모기의 몫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모기는 DDT를 비롯한 무수한 살충제에 대한 내성을 급속히 키우고 있다.
생명공학이 탄생시킨 신무기
이처럼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기와의 전쟁에서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신무기가 최근 등장했다. 생명공학의 꽃이라 불리는 유전자조작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현재 눈부신 과학기술 발전에 힘입어 동식물의 유전자를 조작, 원하는 형질을 가지도록 만들 수 있다. 동물실험을 위한 유전자 조작 쥐, 산출량 상승과 질병 대응력을 높인 유전자조작식품(GMO)이 그 실례다. 그렇다면 모기의 유전자를 조작해 질병을 매개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자손을 남길 수 없도록 할 수는 없을까. 이것이 가능하다면 모기에 의해 유발되는 경제적·보건적 피해를 급감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팀이 설립한 옥시텍은 이중 후자에 주목하고 도전장을 던졌다. 타깃은 뎅기열을 전파하는 '이집트 숲모기(Aedes aegypti)'.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 이 회사는 'RIDL'이라는 기술로 유전자를 조작한 이집트 숲모기를 이용한다.
구체적으로 옥시텍의 RIDL 기술은 암컷과 수컷 모기를 모두 타깃으로 한 '양성 RIDL(Bisex RIDL)'과 암컷만을 타깃으로 한 '암컷 특정 RIDL(Female-specific RIDL)'로 구분된다.
이중 양성 RIDL 기술로 태어난 수컷·암컷 모기는 테트라사이클린(tetracycline)이라는 자연에서는 구할 수 없는 항생물질을 정기적으로 공급받지 못하면 수주일 내에 죽어버린다. 이들을 방사하면 살아있는 기간 동안 야생 모기와 짝짓기를 하며 자신의 유전자를 자손에 물려주고, 이렇게 태어난 자손 역시 테트라사이클린을 섭취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때문에 알과 애벌레(장구벌레)를 거쳐 성충으로 자라나기 전에 죽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모기 개체수가 대폭 줄어드는 것이다.
옥시텍은 이 기술을 적용한 이집트 숲모기(OX513A)와 솜벌레의 애벌레(OX3402) 등을 개발해놓은 상태다. 다만 이 방식은 방출된 모기의 생명력이 짧아 야생의 모기 개체수를 목표숫자 이하로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유전자 조작 모기 방출이 필요하다.
단명(短命)하는 유전자
fsRIDL도 기본 메커니즘은 양성 RIDL과 동일하다. 다른 점은 방사되는 유전자 조작 모기가 오직 수컷이라는 것. 이 수컷 모기는 야생의 암컷과 교미해 테트라사이클린이 공급돼야만 살 수 있는 유전자를 전달하지만 자기 자신은 테트라사이클린 없이도 원래의 수명(1~6개월)을 살아간다. 수컷 모기는 흡혈을 하지 않아 뎅기열 등 질병 전파의 우려가 없다.
특히 이 과정에서 태어난 자손들도 수컷은 테트라사이클린 없이 살 수 있으며 살아가는 동안 아버지와 똑같은 방식으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를 자손에게 대물림한다. 결과적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암컷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종국에는 수컷만 남게 됨으로써 어느 시점에 이르러 대가 끊어져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 방법은 수주일 마다 새로운 유전자 조작 모기를 방출하지 않아도 오랜 기간 개체수 감소 효과가 지속된다는 게 최대 강점이다. 다른 지역에서 꾸준히 새로운 암컷 모기들이 유입된다고 해도 말이다. 옥시텍은 fsRIDL 수컷을 여러 번 방출할 경우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 이집트 숲모기(OX3604C), 지중해 초파리(OX3647) 등이 개발돼 있다.
옥시텍은 자신의 기술이 질병 매개 모기를 포함한 유해곤충을 효율적이고 환경친화적 방식으로 제거할 수 있는 비책이라 선전한다. RIDL은 특정 타깃만을 선별적으로 제거하는 반면 기존의 살충제 대부분은 인간에게 유익한 다른 곤충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죽음으로 내몬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정말 유전자 조작 모기가 이 회사의 주장대로 큰 효과를 발휘하기는 하는 걸까.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다수의 현장실험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지난 2010년 옥시텍은 총 23주에 걸쳐 카리브해 케이맨 제도의 그랜드 케이맨섬에 수컷 양성 RIDL 이집트 숲모기 330만 마리를 방사했다.
실험 종료 직전까지 이들은 총 6만㎡ 면적의 지역에 퍼졌고, 야생 암컷 모기와 정상적으로 교미를 하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뿌려댔다. 옥시텍은 6개월이 지나 섬 전체의 모기 개체수를 조사한 결과, 유전자 조작 모기가 활동한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무려 80%의 모기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확인된 효과, 그 이면의 진실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인 사이언스지 2011년 1월호에도 발표된 이 성과로 인해 옥시텍은 유전자 조작 모기를 활용, 뎅기열 등 모기 매개 질병의 전파를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이후 브라질 북동부 바이아주에 위치한 두 개 지역에도 양성 RIDL 모기를 방출, 6개월 뒤 90%의 개체수 감소 효과를 거뒀다. 기대 이상의 효과에 고무된 브라질 정부는 올 7월 바이아주에 매주 400만 마리의 유전자 조작 모기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 건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수치만 놓고 보면 대단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수준의 성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 모기는 현재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그 첫 번째는 옥시텍이 정말 과학적으로 올바른 실험방식을 사용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일례로 그랜드 케이맨섬의 실험 보고서를 보면 야생 모기 개체수의 일시적 감소폭은 60%에서 85%까지 계산하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다. 유전자 조작 모기가 활동했다는 6만㎡ 지역의 전체 모기 개체수에 대한 기준자료는 아예 없다. 또한 옥시텍은 모기 개체수 파악을 위해 설치한 채집 장치의 위치를 수시로 변경했고, 최소한 500×200m 공간의 방사장이 필요했으며, 70~90m 간격마다 모기가 알을 낳을 수 있는 물웅덩이를 설치해야 했다.
특히 80%의 개체수 감소 효과는 매주 방출하는 유전자 조작 모기의 숫자를 대폭 늘린 결과였다. 실험기간 동안 방사된 330만 마리는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야생 암컷 모기 숫자의 25배에 달하는 것이다. 브라질 실험의 경우 54배의 수컷 모기가 방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보고서에 적시된 결과를 액면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옥시텍 실험의 윤리적 기준도 일반적 과학실험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다. 유전자 조작 모기의 알을 영국령 케이맨 제도로 보낼 당시 유럽과 영국의 기준에 맞는 위험평가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것. 위험평가 보고서가 없는 실험은 관계당국의 인가를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많은 과학자와 환경 운동가들은 적절한 생물학적 안전조치 없이 실험을 진행했다며 비난하고 있고, 논란이 커지자 옥시텍은 실험 이후 뒤늦게 위험평가보고서를 제출했다.
장기적 생태계 교란 우려
논란은 이게 다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옥시텍의 유전자 조작 모기는 그들의 주장만큼 안전하지도 않았다. 이들의 자손 중 일부가 성충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것이었다. 그 수치는 암컷이 낳은 알의 3~4%나 됐으며 테트라사이클린이 공급될 경우 15%까지 높아졌지만 옥시텍은 이런 사실을 숨겼다.
이와 관련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유전자 조작 모기의 암·수 선별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고, 후손들의 생존 가능성도 더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적은 숫자라도 후손들이 생존한다면 진화 속도에 있어서는 적수가 없는 미생물(병원균)들이 생존법을 찾아낼 개연성이 높다는 이유다. 이들이 교배를 해서 태어난 자손들은 테트라사이클린을 차단해도 죽지 않기 때문에 유전자 조작 모기를 아무리 많이 방사해도 효과를 보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학계는 또 장기적으로 유전자 조작 모기의 테트라사이클린 유전 형질이 수평적 유전자 이동을 통해 각다귀, 깔따구, 검은 파리 등 이집트 숲모기가 아닌 다른 종에 전이될 가능성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이집트 숲모기를 잡으려다 자칫 다른 종의 멸종을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는 이들을 먹이로 삼고 있는 새와 박쥐, 개구리, 물고기 등의 생태에 연쇄적 여파를 미쳐 생태계 파괴라는 극단적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학계 연구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라질 등 모기 매개 질병의 피해가 막심한 국가에서는 유전자 조작 모기에 큰 기대감을 갖고 있으며 도입 의지도 높다. 이 분위기를 타고 옥시텍은 추가적인 현장실험을 거친 뒤 RIDL 모기의 상용화 허가를 신청한다는 복안이다.
그 일환으로 현재 이 회사는 유전자 조작 모기가 지극히 경제적인 방법임을 적극 피력하고 있다. 초기 투자비를 제외하면 인구 한 명당 6파운드(약 1만원)의 비용으로 확실한 모기 퇴치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인도, 아프리카 등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의 경우 이 비용은 더 줄어들 수 있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 기술의 활용 폭을 증대하기 위해 뎅기열에 이어 말라리아의 매개체인 암컷 학질모기(Anopheles mosquito), 병충해를 퍼뜨리는 해충 등을 타깃으로 한 유전자 조작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향후 유전자 조작 모기가 본격 상용화되면 우리는 지긋지긋한 모기의 공격과 그로인한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 대가는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클 수도 있다. 현 시점에서는 자연 생태계에 인위적 조작을 가했을 때 먼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DDT (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 1874년 호주의 화학자 오트마르 자이들러가 개발한 유기염소 계열의 살충제.
RIDL Release of Insects carrying a Dominant Lethal genetic system(치명적 우성 유전자 보유 곤충 방사 시스템)의 약자.
수평적 유전자 이동 생식에 의하지 않고 특정 개체에서 다른 개체로 유전형질이 이동하는 현상. 생식에 의한 일반적 유전자 이동과 달리 다른 종으로의 이동도 가능하다.
유전자 조작 동식물 편람 옥수수 2005년 농업생물공학기업 몬산토가 옥수수의 3대 위협인 나방애벌레, 넓적다리잎벌레 유충, 제초제 등을 이겨내면서 수확량은 3배로 늘린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개발했다. 2010년 현재 미국 옥수수 밭의 절반에서 이 품종이 생산되고 있으며,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옥수수는 그 자체로 식량이 되며 가축 사료, 과당, 생분해성 플라스틱, 식용유, 시럽, 치약 등의 원료이기도 하다. 형광물고기 관상용 열대어인 제브라피시를 유전자 조작한 형광물고기 '글로 피시(glo fish)'. 원래는 수질오염 감시용으로 개발됐지만 관상용으로 인기가 높다. 깨끗한 물에서는 평범한 모습이지만 오염된 물에서는 형광 빛을 발한다. 친환경 돼지 1999년 캐나다 퀄프대학 연구팀이 요크셔 돼지의 대체종으로 '인바이러피그(Enviropig)'를 개발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배설물 속의 인(P) 함량을 크게 낮췄다. 인 성분은 땅속에 스며들면 수질과 토양을 오염시킨다. 다만 이 돼지를 사람이 섭취했을 때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못해 연구가 중단됐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10마리가 올해 안락사 처리됐다. 자이언트 연어 일반 연어의 두 배 크기로 자라는 아쿠어드밴티지(AquAdvantage) 연어가 2010년 미식품의약국(FDA)의 식용 안전성 인증을 받았다. 여전히 인증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이 연어를 개발한 미국 아쿠아바운티는 "아쿠어드밴티지야 말로 동일 시간 내에 더 많은 연어고기를 생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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