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과연 재기할 태세를 갖췄는가? 아니면 전성기가 이미 지났는가? 포춘의 필진이 두 가지 시각에서 각각 주장을 펼친다. 우선 비관론이다.
by ADAM LASHINSKY
애플의 몰락을 지켜보는 건 마치 이제 막 한물간 프로 권투 선수가 링에서 비틀거리거나, 한때 세련된 입담을 자랑했던 웅변가가 알맞은 단어를 생각해내지 못해 말을 더듬는 것을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러나 애플이 스티브 잡스 사망 후 휘청거리고 있다는 건 의문의 여지가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것이 마치 중력의 법칙처럼 불가피한 사실이라는 점이 그 충격이나 유감을 완화해주지는 않는다. 애플은 어떻게 몰락했는가? 그 사연들을 한번 되짚어 보자. 애플이 마지막으로 획기적인 제품을 내놓은 건 아이패드를 출시하기 3년 전이었다. 애플 모바일 소프트웨어의 최신 버전을 본 디자인 비평가들은 경쟁사들을 한참 뛰어넘던 애플의 과감한 취향과 연결 짓지 못했다. 오히려 더 엣지 있는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폰을 떠올렸다. 애플의 경영방식은 방어적이고, 직원들의 소속감은 떨어지고 있으며, 경쟁사들의 위협도 커져 가고 있다. 엄청난 속도의 이익 증가세는 정체상태에 빠졌고, 투자자들은 그 엔진을 재가동할 애플의 능력에 대해 신뢰를 잃었다. 애플 주식도 기세가 꺾였지만, 이는 질병 자체가 아닌 증상의 하나일 뿐이다.
진정한 문제는 오랫동안 ‘쿨함’이 뭔지 정의하는 기업이자, 디자인에서 마케팅, 경영의 우수성까지 모든 분야에서 트렌드 세터였던 애플이 엄청나게 대단한 회사에서 그냥 대단한 회사가 돼버렸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는 아직도 가치가 4,000억 달러에 이르고 지난해 순이익 420억 달러를 창출-엑손 모빌 Exxon Mobil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이익을 기록했다-한 회사를 논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대부분의 부정적인 평가는 애플 자신과의 비교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애플의 상대적 쇠퇴는 회의론자들이 애플의 전설적 리더가 사망한 후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던 그대로 정확하게 발생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CEO 자리를 지킨 인생의 마지막 15년 동안, 비전을 설정하고 최선의 행동 경로로 이끄는 자신의 능력 하나만으로 공동 창업한 회사를 파산 직전에서 구해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았다.
실제로 오늘날 애플의 탄탄한 재무 구조와 막강한 제품 라인업은 아이맥, 아이튠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가 우리 삶을 바꾸기 전의 불행한 상황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건하다. 그러나 애플이 현재 투사하는 자신의 이미지는 옛날의 어려운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애플은 고객들과 나눌 놀랍고 새로운 신제품 카테고리 대신 값비싼 광고 캠페인을 공개했다. 이번 캠페인은 1997년에 나온 상징적인 광고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PC를 웃음거리로 만든 ‘맥 컴퓨터를 잡아라(Get a Mac)’처럼 경쟁사를 물고 늘어지는 코믹한 광고도 아니고, 그렇다고 애플의 기기들을 자랑하는 제품 광고도 아니다. 대신 예쁜 영상들을 늘어놓는 데 그치고 있다. 애플 제품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은 거의 없고, 대신 회사의 신념을 나열하는 식이다. 이 중에는 “모든 ‘예스(yes)’ 뒤에는 천 번의 ‘노(no)’가 있다”와 “우리는 몇몇 위대한 물건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낸다” 따위가 있다.
마치 단순히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선전하기보단 애플이 아직 위대하다고 자신에게 확신을 주려는 것 같다. 현대사에서 가장 뛰어난 마케터들 중 하나인 애플이 뭔가를 보여주기보단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애플에 가장 뼈아픈 비판은 혁신의 날이 무뎌졌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연례 개발자회의의 기조 프레젠테이션에서도 최근 연이은 비판에 대한 애플의 방어적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필 실러 Phil Schiller 글로벌 마케팅 부사장은 다시 인상적으로 디자인된 전문가용 매킨토시 컴퓨터 신제품을 소개하던 중 “혁신을 더 못 한다니, 헛소리 말라”고 불쑥 말을 내뱉었다. 우호적인 청중들 앞에서 행동을 촉구한 발언이어서 예상대로 지지의 함성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의심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었다. 예전의 애플이라면 절대 이렇게 친히 확인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실러는 전성기 시절 잡스가 올렸던 천재적인 성과에서 믿음직한 조역을 했던 인물이다. 그가 극히 소수의 애플 고객들만 구매할 것같은 제품을 내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더 가시적인 영역에서 신선한 아이디어가 없다는 사실을 오히려 드러낸 꼴이었다.
애플이 요즘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은-비평가들이 페인트를 한 겹 덧칠한 것뿐이라고 비웃은-업데이트된 모바일 소프트웨어 iOS 7의 새로운 외양과 느낌 정도다. 애플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캐피털 투자자는 “조니로부터는 기발한 뭔가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애플의 베테랑 하드웨어 디자이너이자, CEO 팀 쿡 Tim Cook이 최근 소프트웨어 디자인 책임자 자리까지 맡긴 조너선 아이브 Jonathan Ive를 언급한 것이었다. “확실히 기발해 보이지는 않는다. 안드로이드와 윈도 폰의 잡탕처럼 생겼다.” 게다가 최근 출시된 애플 제품 대부분은 기존 기기의 재탕이었다. 모건 스탠리 Morgan Stanley의 애널리스트 케이티 허버티 Katy Huberty는 “비관론자들과 논쟁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아이패드 미니는 크기가 더 작아진 아이패드에 불과하다. 정말 투자자들의 뒤통수를 칠 만한 참신한 신제품을 내놓아 애플의 혁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허버티는 주가 면에선 자신이 낙관적이라면서, 최근 거의 52주 최저가인 400달러로 주저앉은 애플 주가가 향후 540달러까지 반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애플이 피상적인 것부터 의미 있는 것까지 모든 측면에서 자신의 방식에 갇혀 있다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들-아이워치 iWatch나 다른 종류의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 TV, 업계를 선도하는 5억 7,500만 아이튠스 계정을 바탕으로 한 지불 또는 청구 시스템-이 곧 출시될 것이라는 암시는 있었다. 그러나 이 제품들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이제는 대부분의 제품과 그 기능의 정보가 사전에 유출돼 애플 신제품이 어떤 것일지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개발자회의에서 애플은 아이튠스 라디오 iTunes Radio라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발표했지만 아직 출시 준비가 안 됐고,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판도라 Pandora와 매우 흡사해 보인다.
쿡이 CEO에 오른 후 분명 애플이 자초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상처들’이 있었다. 소매 책임자 영입이 실패로 돌아갔고(영국의 딕슨스 Dixons로부터 영입한 존 브로윗 John Browett이 9개월 만에 회사를 떠났다), 그저 그런(그래서 당혹스러운) 모바일 매핑 서비스 mobile mapping service를 출시하기도 했다. 또 경쟁업체들이 혁신하고 연구개발에 집중하면서, 애플은 한때 독점했던 요란한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겨 곤란을 겪고 있다. 예컨대 구글은 미래에서 온 듯한 괴짜스러운 안경 모양의 컴퓨터 구글 글라스 Google Glass를 내놓아 개발자들을 열광시켰다. 검색업계의 거물 구글은 웹 서비스 분야에서도 계속 앞서나가고 있다(구글 나우 Google Now, 구글 드라이브 Google Drive를 생각해 보라). 애플에서 일하다 현재는 신생 기업으로 옮긴 한 직원은 전 회사가 미래의 트렌드인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 서비스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애플에서 오랫동안 몸 담았던 그는 “애플이 소셜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아무런 실마리를 못 잡고 있어 걱정된다”고 밝혔다. 경쟁사들의 공세에 애플은 방어적이면서 무례하게 대응해 왔다. 지난 3월 삼성이 최신 휴대폰 갤럭시 S4를 공개하기 하루 전, 애플의 마케팅 책임자 실러는 몇몇 매체와의 공식 인터뷰에서 삼성과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맹비난했다(이쯤에서 애플이 중역들 중 누구도 이번 기사에 대한 견해를 밝히거나 이 기사의 주장들에 대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음을 밝혀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애플 사단이 동요하는 조짐도 보인다. 다수의 채용 담당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최근이 애플 직원들에게 이직을 설득하기가 쉬운 시기라고 말한다. 전 직원들은 애플 내부 문화가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따분한’ 상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애플에선 한 가지 역할을 수년간 계속하면서 상사들이 고안한 계획을 충실히 실행하는 것이 드물지 않다. 주가가 올라가고 애플 제품들이 빛을 발할 땐 이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애플의 채용 담당자였다가 그루폰 Groupon으로 이직한 체타 크롤리 Chetta Crowley는 “요즘에는 다음 멋진 기기(the next cool thing)가 나올 것이라는 직원들의 믿음이 줄었다”고 지적했다.
애플은 전략적으로 숨겨둔 패를 아직 다 꺼내지 않았다. 애플은 오랫동안 대규모 기업인수를 꺼려 왔다. 최근에도 크라우드소스 매핑 회사 웨이즈 Waze를 선뜻 인수하지 않는 등(결국 구글이 10억 달러가 넘는 가격에 인수했다) 인기 있는 합병 건을 좇지 않는 경향을 고집했다. 트위터, 스퀘어, 네스트 등 실리콘밸리의 유망 기업들을 인수하는 대신 목적이 뚜렷한 인수만을 고집하고 있다. 증권사 보고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10월 시작된 회계연도 전반기 동안 인수에 6억 달러 미만을 썼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액수가 오센텍 AuthenTec이라는 지문 센서 칩 제조업체 인수에 들어갔다.
월가는 애플이 그 막대한 자금을 활용해 젊은 인재들을 유치하거나, 웹 서비스 포트폴리오를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있기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 애플에게 아직 공개하지 않은 비장의 무기가 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세계 최고 가치의 테크놀로지 회사에 적용되는 기준은 충족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높게 마련이다. 더 대담한 행동을 바라는 투자자들의 억눌린 기대에는 부응하더라도, 애플이 전성기 때 세운 기준에는 영원히 부합하지 못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