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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야! 불이야!

악몽 같은 산불 시즌에는 과학자들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 사이에서 생명을 지켜주는 유일한 방어막이 되곤 한다.





2015년 8월 19일 오전 6시 미국 기상청의 재난 기상관(IMET)인 줄리아 루스포드가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동쪽으로 3시간 떨어져 있는 첼랜 폴스 공원에 들어선 천막 캠프의 임시 무대로 올라갔다. 무대 앞에는 땀내와 탄내에 찌든 티셔츠를 입은 소방관 150여명이 모여 있었다.

소방관들은 한눈에 봐도 지쳐 있었다. 지난 22일간 텐트에서 거주하며 하루 16시간씩 첼랜 폴스 외곽의 다발성 산불을 진압해왔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에도 워싱턴주에서만 무려 1,300㎢ 면적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캠프에도 연기가 퍼지고 있었다.

줄리아의 임무는 매일 아침 브리핑을 통해 ‘첼랜 복합화재(Chelan Complex)’라 명명된 이번 대형 산불을 진압하기 위한 세부적 기상정보를 예보하는 것이었다.

“여러분들이 아셔야할 중요한 기상정보가 있습니다. 현재 적색기가 발령됐습니다.”

적색기 경보는 대기가 건조하고 불안정해 화재가 평소보다 쉽게 번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지도 위를 가리키며 호수 근처의 산마루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바람이 여기 이 굽이를 따라 강하게 불 것으로 예상됩니다. 15시 이후 남풍에서 북서풍으로 바뀔 것으로 보입니다.”

줄리아는 이번 산불과 관련한 일기예보를 2주일간 수행하면서 산불이 어떤 일을 벌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한번은 300~500년에 한 번 산불이 난다는 고산 빙하아래의 울창한 소나무 숲에 6 0 m 높이의 화염이 치솟았고, 어떤 날은 첼랜 호수 주변에 번개가 치면서 새로운 산불이 일어나 단 24시간 동안 2만2,500헥타르(㏊)의 삼림이 잿더미가 됐다.

“이번 바람은 최고 시속 50㎞의 강풍입니다. 이 바람을 타고 화염이 주변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도 있어요. 오늘은 특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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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은 화재가 얼마나 파괴적으로 변할지 알려줄 핵심 요인이다. 강풍이 불면 풍속에 비례에 산불이 확산되며, 대형화재가 만들어낸 극도의 고온 환경은 종종 기묘한 기상 현상을 일으킨다. 예컨대 1871년 위스콘신주 페시티고 지역에서 산 불이 났을 때 한랭전선과 회오리바람이 만나 불기둥 토네이도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산 불로 1,500여명이 숨졌다. 생존자들은 대형화재가 공기 중의 산소를 없애버려 비행 중 질식사한 새들의 시체가 땅위에 수북이 쌓여있는 진귀한 광경도 목격해야 했다.

이와 관련 첼랜 복합화재 당시 산불 확산 방식 예측에 참여했던 화재거동(fire behavior) 분석관 스튜어트 터너는 화재에 있어 지형과 연료는 불변의 요 소라고 설명한다. “변하는 것은 오직 기상뿐이에요. 그래서 줄리아와 같은 I MET들에게 많이 의지합니다.” 현재 미 전역에는 총 83명의 IMTE가 활동 중에 있다. 평상시 자신의 거주지 관할기상청에서 근무하다가 재난이 발생하면 소집돼 현장으로 급파된다. 이들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2012년 허리케인 샌디 때 향후 상황을 예측했고, 2010년 딥워터호라이즌호의 멕시코만 원유 유출사고 때는 그 여파를 분석했다.

하지만 IMET가 출동하는 단골 재해는 바로 산불이다. 이들은 화재 현장에서 하루 16시간 이상 근무하며 1만3,000㏊나 되는 방대한 면적부터 축구경기장 크기의 좁은 면적에 이르기까지 매일 기상에 대한 두 번의 일일예보와 한번의 장기예보를 준비한다. 또 수시로 무전기를 이용해 소방관들에게 바람의 변화 를 알려주며, 공식석상에서 해당 상황을 발표하기도 한다. 물론 화재에 맞서 싸울 구체적 전술의 수립은 IMET가 아닌 소방관의 몫이다.

줄리아에 따르면 과거 소방관들은 기상예보를 묵살하거나 전달받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이로 인해 종종 비극적 결과가 초래되기도 했다.

실제로 1994년 한랭전선에 의해 콜로라도주 사우스캐니언 산불이 글렌우드 스프링스 지역으로 번지면서 정예 소방관 14명이 희생됐다. 또 2013년 애리조나주야넬 힐 산불 때는 갑자기 불어온 초속 22m의 강풍 때문에 19명의 소방관이 화마(火魔)에 갇혀 순직했다. 두 사례 모두 사전 기상예보가 있었음에도 발생한 사건이었다.

“당연히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모든 소방관들이 IMET의 예보에 귀를 기울입니다.” 올 한해에만 IMET는 150여회 화재현장에 배치됐다. 한 번에 44명이 동시 파견돼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는 화재가 용이하게 일어나는 미국 서부지역의 지리적 특성에 기인한다. 매년 발생하는 산불이 7만건에 달한다. 게다가 과거 서부는 황야였지만 지금은 1억4,000만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산불로부터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면 소방관들은 활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야 하는 실정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원에는 돈도 포함된다. 미국 최대 소방조직인 산림청만 해도 올 여름 산간오지의 산 불 진압을 위해 소방관과 소방헬기, 중장비 등을 보내는데 14억 달러(약 1조5,700억원)를 사용했다. 그럼에도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 태평양 연안 북서부를 중심으로 360만㏊ 이상의 면적이 재로 변했다. 전문가들은 올 한해 산불 피해면적이 역대 최대인 총 400만㏊, 3,000가구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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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브리핑 후 줄리아는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갔다. 바로 이곳에 서 바람과 기온, 기압 등의 기상조 건들이 복잡다단하게 상호작용 하며 일어날 결과들을 예측한다.

벽에는 화재현장의 적외선 사진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지만 온도계나 기압계 따위는 보이지 않 았다. 손에 쥔 도구에 의존하는 소방관들과 달리 그녀는 노트북과 기상 시뮬레이션 모델로 화마와 싸우기 때문이다. 노트북으로 다가간 그녀는 미 북서부 상공을 떠돌고 있는 수증기와 컬럼비아강의 표면온도를 보여주는 위성사진, 화살표가 가득한 풍향지도를 클릭했다. 그리고 시뮬레이션 모델을 돌려 산맥 위에서 모아졌다가 벌어지는 기압선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공기가 땅 위를 지나가는 방식은 물이 강을 따라 흘러가는 방식과 비슷합니다. 둘 모두 지형학적 특성에 따라 속도와 밀도가 달라지죠.”

줄리아는 기상예측을 위해 미국 내 123개 기상대를 포함, 여러 곳의 데이터를 취합한다. 하지만 기존 데이터는 예측 정밀도가 면적기준 1.3㎢ 정도로 넓어 현장의 미묘한 지형 차이를 반영하지 못한다. 그래서 직접 수집한 데이터를 추가한다.



“원격 무인 기상관측소(RAWS)를 화재지역 인근에 설치, 기상 정보를 실시간 업데이트합니다. 또 며칠마다 기상관측 기구(氣球)를 띄워 화재 현장 상공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직접 헬리콥터에 올라 육안으로 확인하기도 합니다.”

물론 시뮬레이션 모델의 도움이 있더라도 정확한 일일 기상예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정확성 향상을 위해 그녀는 거의 하루 종일 오늘의 예보 내용과 실제 기상상황을 비교 분석해 다음날의 예보에 반영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그녀의 예보는 정확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그녀 역시 이 점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사실 그녀가 기상학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자신의 취미인 윈드서핑과 스키, 카약을 즐길 최적의 장소와 시간을 알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2003년 첼랜 폴스로부터 60여㎞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한 화재에 투입된 것을 시작으로 IMET의 임무를 맡게 됐다. 그것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과거에는 즐기기 위해 기상학을 공부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화재에서 사람들을 지키는 게 제 목적의 전부입니다. 매년 1개월은 반드시 소방 캠프에서 보내요.”

줄리아는 천막의 노트북에서 기압 측정치를 보여주는 3개의 화면을 클릭했다. 대개는 기압의 차이를 보여주는 기압 경도(傾度) 지도까지 확인하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기압의 수치 차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기온 역전으로 인해 화염 윗부분의 뜨거운 공기층이 오도 가도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아침 브리핑에서도 언급했듯이 캐스케이드 산맥 서쪽에 신경 쓰이는 기상현상이 있네요. 태평양 동쪽에서 온 소금기를 머금은 바다 공기의 띠가 고도 3,000m의 산봉우리들에 막힌 채 쌓이고 있어요.”

시뮬레이션 모델에 의하면 오늘 오후 2시경 이 공기층이 산 정상을 넘으면서 첼랜 호수를 향해시속 50㎞의 강풍이 불어올 것으로 예측됐다.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사안이자 아침 브리핑 때마다 꼭 소방관들에게 전하는 사안이 바로 이런 자연의 아우성이다.

“기온 역전이 일어난 곳을 이 바람이 뚫고 지나가면 그 아래에저장돼 있던 열에너지가 하늘로 솟구칠 거예요. 여기에 산소가 공급되면 위험한 바람이 생성돼 산불이 크게 번질 수 있습니다. 끓는 주전자의 뚜껑이 튕겨져 나가는 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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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뒤 줄리아는 미 산림청의 지프차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조수석에는 10여 년간 다수의 화재 진압 작전에서 줄리아와 공조했던 화재거동 분석관 스튜어트가있었고, 그가 가르치고 있는 교육생 조셉 플로레스가 운전을 했다.세 사람은 첼랜 호수가 굽어보이는 산마루로 향하는 중이었다. 6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첼랜 폴스를 화마에서 지키기 위해 소방관들이 불도저를 동원해 방화선(防火線)을 쳐놓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줄리아는 자신의 예보와 실제 산불의 움직임을 비교하려 했다.

마을을 지나치는 동안 첼랜 호수 수면 위에 옅은 안개처럼 쌓여있는 연기가 보였다. 아직은 기온 역전이 냄비뚜껑을 주전자에 붙잡아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순간 호숫가의 불타버린 주택 한 채가 줄리아의 눈에 들어왔다.

“안타깝네요. 저번에 봤을 때만해도 건재했었는데.” 그렇게 비포장도로를 1시간여 달리자 방화선이 나타났다. 소방관들이 토치를 이용해 방화선 주변의 숲 에 일부러 불 을 지르고 있었다. 산 불의 진행방향 앞쪽에 불에 탈만한 것들을 미리 제거해놓는 방화선과 마찬가지로 작은 맞불들을 전략적으로 놓으면 대형 산불이 태울 연료가 사라져 산 불진행을 차단할 수 있다. 밤이 오기 전 약 1.5㎞ 길이의 산마루를 모두 태우는 것이 소방관들의 목표였다.

차에서 내려 맞불 작전을 지켜보던 줄리아의 뒤쪽에서 돌연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온 공기가 드디어 캐스케이드 산맥의 봉우리들을 넘어온 것이었다. 그 결과는 즉각 나타났다. ‘휙’하는 소리와 함께 800여m 떨어진 산마루 뒤쪽의 전나무들에 불이 옮겨 붙었고,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또 여러 방향에서 불길이 방화선을 향해 다가 왔다. “대기가 불안정해요!”

치솟은 연기가 4,500m 상공의 뭉게구름에 유입돼 응결되는 것을 확인한 줄리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첼랜 호수 상공의 공기는 맑았고, 멀찍이 3개의 연기기둥이 대기권으로 뻗어나갔다. 그녀는 자신의 예측이 정확하게 맞았음을 확인하고, 지프에 올라탔다.

인근의 트위스프 마을 외곽에 새로 일어난 산불이 연기기둥을 뿜어내기 전에 자리를 떴다. 이 연기기둥은 바람을 타고 시카고를 향해 날아갈 것으로 예견됐지만 줄리아 일행이 천막 캠프에 도착할 때쯤 캠프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바람은 여전히 강했고, 산불은 기세를 더해갔다. 이대로라면 오래지 않아 첼랜 폴스를 덮칠 수도 있었다.

결국 캠프의 지휘부가 모여 논의한 결과, 다른 지점에서 활동 중이던 소방헬기와 소방차, 소방관들을 80㎞ 떨어진 트위스프 화재 현장에 투입키로 했다. 이때 산림청의 642호 소방차도 위치 이동을 명령받았다. 이후 줄리아의 예측대로 강풍이 첼랜 폴스 외곽에 도달하면서 산 불이 함께 몰려왔다.

1시간여의 사투가 이어졌을 무렵 천막 캠프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트위스프 마을의 한 도로에서 전소된 642호 소방차가 발견된 것이다. 차량 내부에 소방관 3명의 시신이 있었고, 나머지 팀원 1명이 차량 밖에 중화상을 입고 쓰러져 있다가 구조됐다는 내용이었다.

소식을 접한 지휘부는 침통에 빠졌다. 어떤 이는 눈물을 쏟았고, 어떤 이는 숙소로 들어가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줄리아도 텐트로 돌아와 한껏 굳어진 얼굴로 책상 앞
에 앉았다. 함께 들어온 스튜어트가 그녀를 위로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우리는 날씨를 예측할 뿐 조종할 수는 없으니까요.”

스튜어트가 떠나고도 꽤 오랫동안 줄리아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하지만 계속 그러고 있을 수 는 없었다. 더 이상의 희생을 막으려면 내일 아침 브리핑을 더 정확히 준비해야 했다. 마음을 다잡고 노트북 화면을 열었다. 화면 속 상황은 오늘보다 나빠 보였다. 크게 심호흡을 한 그녀는 차분히 분석에 들어갔다.

산불과의 전쟁
미국에게 올해는 최악의 산불철로 기록될 전망이다. 특히 알래스카주와 워싱턴주가 심한 타격을 입었다. 알래스카주의 경우 피해면적이 이미 200만㏊를 넘어섰다. 예년의 평균 산불피해 면적이 24만㏊임을 감안할 때 엄청난 피해다.



IMET - Incident METeorologists.
RAWS - Remote Automated Weather Station.
기온 역전 (temperature inversion) - 야간에 지표면의 열이 식으면서 지면 근처의 공기 온도가 상층부보다 낮아지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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