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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13월 세금폭탄' 논쟁의 주범과 종범

미래세대 희망까지 앗아간 연말정산 조삼모사식 행정은 반발만 폭증

'오해' 주장보단 꼼수증세 반성부터

한국적 용어 '세금 폭탄' 퇴출시키고 인화성 높은 조세 저항 차단해야


연말정산으로 온 나라가 난리 법석이다. 기획재정부는 제도 보완을 다짐하고 여당은 원위치 환원을 촉구하고 나섰다. 납세자들의 분노와 불만이 정부 여당을 속박하는 모양새다. 과연 정책 의도가 나빴을까. 그렇지 않다. 상대적으로 고소득자에게 부담을 더 주고 저소득층 지원 재원을 마련한다는 정책 취지는 온당하다 못해 정의롭다.

문제는 납세자들의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당연하다. 연말정산으로 설을 치르고 부모님과 아이들의 용돈으로 충당해왔던 터에 되레 토해내는 판이니까. 난점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납세자도 억울하고 정부도 억울하단다. 급여 생활자들은 땀 흘려 일했고 정부 정책 의도 역시 선의였는데 결과는 왜 이 모양인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인식의 차이 때문이다. 납세자들은 '꼼수 증세'가 깔려 있다고 판단한다. 상당 부분 사실이다. 적어도 기재부 의도대로 연말정산 시즌이 지나가면 1조3,000억원가량의 증세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그 증좌다. 더욱이 '저소득층에 대한 무차별 위장 증세'라는 논란을 낳았던 담뱃값 인상에 대한 반감이 여전한 상황이다. 두 번째 요인은 고약하다. 연말정산을 세금 폭탄으로 인식하게 만든 주범은 정치다. '세금 폭탄'이라는 용어 자체가 지극히 한국적이다. 영어권에서 'Tax Bomb(세금 폭탄)'이라는 표현은 낯설다. 세금 납부를 지연하거나 세제 개편으로 세 부담 증가가 우려될 때 '세금 시한폭탄(Tax Time Bomb)이 다가온다'는 표현을 제한적으로 사용할 뿐이다. 한자를 공유하는 중국이나 일본에도 '세금 폭탄'이라는 용어가 아예 없다.

옛 신문을 살펴보니 '세금 폭탄' 용어가 등장한 시기는 2004년. 재산세 인상을 두고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전가보도처럼 휘둘렀다. 2005년 종부세 논란에는 종부세 납부로 이득을 보는 빈민촌 세입자들마저 '세금 폭탄 때문에 경제가 거덜난다'며 정부를 비판할 정도로 '세금 폭탄'이라는 정치적 프로파간다(propaganda)가 제대로 통했다. 지금 야당의 행태는 10년 전 야당이던 현 여당과 놀랍도록 닮은꼴이다.

경중의 차이만 존재할 뿐 여야는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점을 반성해야 한다. 결의안 통과에 반대표를 던진 의원도 달랑 여섯 명에 불과한 정치권이 공방전을 벌이는 입과 낯으로 사과하는 게 해결점을 찾는 첫 순서다. '13월의 세금 폭탄' 논란의 종범은 정부다. 정책을 수립하는 공무원들은 국민들에게 보다 솔직하게 재정 상황을 알리고 협조를 구하는 것이 순리다.



정치권과 정부는 세금 문제가 갖는 인화성을 심각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세상을 바꾼 사건에는 꼭 세금이 개입돼 있어서다. 지금부터 꼭 800년 전 러니미드 숲에서 서명된 '대헌장(Magna Carta)' 제1항이 '의회의 동의 없는 국왕의 세금 징수 중단' 약속이다.

미국 독립전쟁은 '대표권 없는 세금 없다'는 슬로건 밑에서 치러졌다. 네덜란드 독립전쟁도 중과세 때문에 싹텄다. 굳이 멀리 갈 것도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허화평 전 청와대 수석은 1979년 10·26을 촉발한 부마항쟁은 불황의 초입인 1978년부터 시작된 부가가치세에 대한 상인들의 조세저항에서 비롯됐다는 글을 수차례 남겼다.

국민들의 불만은 정치권의 반성과 정부의 면밀한 계획으로 진행돼야 하건만 최경환 경제부총리나 정치권 인사들의 언사를 보면 진지함도, 반성도 보이지 않는다. 국민을 마치 원숭이처럼 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근대 경제학의 시초의 한 사람인 데이비드 리카도는 '동등성 정리'에서 '납세자는 현명하기에 조삼모사식 세금 정책은 반발을 부른다'고 했다. 납세자를 우둔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조삼모사식 발상을 집어넣으시라. 국민은 원숭이가 아니다. hongw@sed.co.kr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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