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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흔들리는 통합의 가치, 기로에 선 유럽


그리스 재정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2012년 독일 슈피겔지는 유럽연합(EU) 출범에 큰 공헌을 한 헬무트 콜 전 서독총리와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의 온라인 대담을 열었다. 두 노(老)정치가는 살아생전에 유로존 붕괴를 목격할 것으로 보느냐의 질문에 나란히 "우리 둘보다는 유로가 오래갈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유로존 회원국(당시 17개국)이 지나치게 많고 특히 준비가 되지 않은 그리스를 받아들인 것은 실수라고 꼬집었다.

시계가 3년여 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25일 치러진 총선에서 그리스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그리스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에 힘입어 과반수의 의석을 확보했고 40세의 젊은 정치인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수상에 오를 것이 확실시된다. 5년 연속 마이너스 경제성장과 50%가 넘는 청년 실업률이 상징하는 고실업에 짓눌린 그리스 국민들에게 "더 이상 긴축은 없다. 구제금융을 제공한 트로이카(EU집행위원회·유럽중앙은행·국제통화기금(IMF))와 부채 탕감을 위한 재협상을 하겠다"는 시리자의 공약은 속 시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계 금융 시장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의미하는 그렉시트(Grexit)의 가능성과 그로 인한 파장을 계산하는 데 분주하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냉엄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찾기보다 화끈한 말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내 정치 권력을 차지하는 현상이 유럽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들 정치세력을 이끄는 인물들은 대체로 40대 젊은 지도자라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당장 고통 덜겠단 정치인 연이어 당선

지난해 혜성처럼 등장한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 총리도 40세에 불과하다. 또 지난해 10월 벨기에에서 중도우파를 이끄는 샤를 미셸이 승리함으로써 베네룩스 3국은 모두 40대 총리로 채워졌다. 중부 유럽의 강력한 리더로 떠오르고 있는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 역시 그런 유형의 정치인이다. 영국에서 공부하고 1989년 구소련연방이 해체되기 전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그는 35세였던 1998년 처음 총리에 올랐다가 2002년 실각한 뒤 다시 2010년 집권해 5년째 헝가리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재집권 후 그의 노선은 과거와 정반대다. EU 회원국임에도 EU가 정한 재정적자 상한선인 3%를 무시하고 에너지·금융 등을 장악하고 있는 외국계 자본에 대한 과세를 대폭 강화했고 EU가 이민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최근 스위스가 유로와 연동돼 있던 자국 화폐 스위스프랑의 최저환율제를 폐지하면서 폴란드 등 많은 동유럽 국가들에서 스위스프랑으로 받은 모기지 대출 때문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헝가리는 강제적으로 해외 은행의 대출을 줄이게 한 덕분에 별 피해를 입지 않았다.

유럽중앙은행(ECB)이 1조1,400억유로의 전면적인 양적완화를 도입했음에도 유로존의 회복을 기대하는 낙관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바주카포'가 주식과 국채 등 자산가격을 끌어올릴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펀더멘털을 바꿔놓는 구조개혁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일시적 버블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의 핵심인 노동과 공공개혁, 연금 및 복지 등 사회개혁은 고통이 수반되는 힘든 과정이다. 이러한 고통을 국민들이 받아들이고 수행해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나갈 만한 능력을 지닌 지도자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은 좌파든 우파든 상관없이 이러한 구조개혁보다는 당장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정치 세력이 선택을 받고 있다.



경제위기에 공동번영 목표 빛 바래

유럽 통합의 모태가 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발효된 지 23년이 지났다. 한때 통합된 유럽은 과거 강국에 의한 약속의 병합이라는 힘에 의한 통합 대신 각국이 자발적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상호 협의와 협력을 통해 공동번영을 추구한 결과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의 가치는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정치적 불만이 쌓이면서 퇴색하고 있다. 주요국들에서 EU에 대한 지지율은 30%대로 추락한 상태다.

유로존 경제는 여전히 암울한데 이를 바꿔놓을 만한 '빅 아이디어'도 없으며 담대한 정치인도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 한 해 예정된 영국·덴마크·포르투갈·스페인 등 주요국 선거에서 유럽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이학인 국제부장 leej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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