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진열대에 구두 세 켤레가 전시돼 있다. 빨간색ㆍ연두색ㆍ하얀색 등 색상도 화려하다. 지나가는 손님들이 눈길을 한번씩 주지만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구두 상품에 대한 정보나 설명서가 아예 없거나 부실하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물건을 사서 사용하다가 하자가 있어도 반품이나 환불은 절대 할 수 없다는 판매원의 거만한 설명에 눈살을 찌푸린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백화점의 처사에 불만을 토로한다.
서울 여의도 정치판에 이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새누리당(빨간색)은 지난달 20일 박근혜 후보를 대선주자로 선정했지만 아직까지 경제민주화ㆍ일자리ㆍ복지 등에 대해 두루뭉실한 공약 청사진만 내놓았을 뿐 구체적인 내용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범위와 내용을 놓고서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이한구 원내대표,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제각각 딴 소리를 내면서 구심점을 잃고 있다. 박근혜 대선 후보의 대선공약을 총괄하는 국민행복추진위에 대한 조직구성과 인선작업이 지난 16일 마무리됐지만 17개 추진단별 주요 정책과 내용이 나오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연두색)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문재인 후보가 16일 대선 후보 수락연설에서 일자리ㆍ복지ㆍ경제민주화ㆍ정치ㆍ남북관계에 대해 큰 그림을 내놓았지만 구체적인 플랜과 실행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번주 출마선언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은 자신의 저서인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 대략적인 방향만 적어놓았을 뿐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문 후보와 안 원장 간 단일화가 불가피하고 단일화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야권 후보의 정책공약은 빨라야 10월 말이나 돼서야 가능할 것으로 점쳐진다. 새누리당 역시 야권 단일화 과정과 시점을 지켜보면서 구체적인 정책공약을 발표할 것으로 보여 국민들의 여야 정책검증은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지나갈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대선 투표는 미인대회가 아니다. 외양과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속은 텅텅 빈 사람을 솎아내는 여과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치열한 정책공방을 통해 국민들이 상품(대선후보)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구체적인 정책과 세밀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권의 불공정거래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안 원장은 국민을 상대로 불공정거래를 하지 말고 하루빨리 정책대결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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