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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버핏이 도요타를 만난 까닭은

장기투자자 겨냥한 R&D용 주식 발행

'가치투자' 앞세워 해외반발 잠재워

혁신과 창조적 성장기반 갖추려면

우리 기업도 팬덤투자층 확보해야


지난달 중순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에서 열린 도요타의 정기주총. 한 주주가 도요다 아키오 사장에게 워런 버핏 회장과 만나 주총 안건인 신종주식 발행과 관련해 논의한 적이 있느냐고 질문했다. 도요다 사장은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시장에는 곧바로 버핏과 도요타의 제휴설이 퍼져나갔다. 덕분에 도요타는 논란을 빚었던 5,000억엔 규모의 신종주식 발행 안건을 75%의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도요타의 '모델 AA주(株)'는 5년 동안 처분할 수 없지만 의결권과 배당권리를 부여하고 있어 기존 주주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해외의 반발이 컸다. 의결권 자문사인 ISS도 반대 의견을 내놓아 주총 통과가 힘들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하지만 '가치투자의 달인'이라는 버핏을 지원군으로 내세운 도요타의 전략은 111차례의 주총에서 단 한 번의 부결 사례도 남기지 않은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도요타가 국내외 주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례없는 신종주식 발행을 밀어붙인 것은 중장기 전략사업을 뒷받침할 장기 투자자를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도요타는 개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주식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을 연료전지자동차(FCV) 등 미래차 연구개발(R&D)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5년간의 신차 개발주기에 맞춰 투자 재원을 마련함으로써 주가 변동이나 단기 성과에 관계없이 신성장 사업에만 전념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작금의 한국 기업도 삼성물산 합병 작업에서 보듯이 더 많은 장기 투자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고민을 안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투자자들의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은 8.6개월로 조사 대상 144개 국가 가운데 이탈리아·중국에 이어 네 번째로 짧은 편이다. 평균 보유 기간이 28개월인 싱가포르는 물론 독일(13.2개월)이나 일본(12.1개월)에 비해서도 격차가 크다. 이렇다 보니 주주들은 분기별로 발표되는 수익에만 일희일비할 뿐 R&D나 신성장사업처럼 당장 성과를 창출하지 못하는 사업에 투자하기를 꺼리는 판국이다. 장기 투자의 필요성은 혁신과 창조를 중시하는 벤처기업일수록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벤처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은 일부 성급한 투자자들의 실적 압박을 가장 견디기 힘든 애로사항이라고 하소연한다. 정부가 운용하는 펀드마저 2~3년마다 감사를 통과하기 위해 당장 성과를 올려야 한다고 윽박지르기 일쑤다. 정부에서 주창하는 창조경제가 이런 척박한 풍토에서 제대로 꽃을 피우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일 뿐이다.



장기 투자자를 늘리자면 무엇보다 기업의 적극적인 주주친화정책과 투명경영이 선행돼야 한다. 지금처럼 대주주의 눈치만 살필 것이 아니라 일반 주주들의 이익 침해 여부를 세심하게 살피고 주주들의 폭넓은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평상시에는 주주들을 무시하다가 다급할 때에야 애국심에 호소하고 선심 공세를 퍼붓는 행태는 오히려 주주들의 반감만 자초할 뿐이다. 증시가 툭하면 정치권 싸움 같은 경제 외적 변수에 휘말리다 보니 투자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도 하루빨리 벗어나야 할 고질병이다.

저금리 시대를 맞아 주식 투자의 메리트가 높아진 만큼 장기 보유를 촉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선진국처럼 주식을 2년 이상 보유한 주주들에게 이익 배당금을 더 얹어주거나 보유 기간에 따라 의결권을 달리하는 '테뉴어 보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책당국은 지배구조 개선 차원에서 주주 권익을 보장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투자시대를 맞아 열혈 팬을 거느린 한류 스타처럼 팬덤 투자층을 확보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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