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이 오는 10일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기업인들을 증언대에 줄줄이 세우려 하고 있다.
19대 국회 마지막 국감장에 상임위마다 앞다퉈 대기업 총수를 증인 및 참고인으로 부르려는 것이다. 올해는 특히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등의 여파로 대기업 회장 출석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0순위’ 호출 후보로 꼽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은 롯데 경영권 분쟁과 국내외 계열사 출자 현황 등을 묻기 위해 현재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정무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등 상임위에서 잇따라 증인출석을 요구받고 있다.
기재위에서 야당은 면세점 독과점 논란과 관련, 신 회장을 비롯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을 국감장으로 부를 방침이다. 산자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대기업의 영업 확장으로 인한 중소상공인들의 피해 현황을 파악한다며 신 회장 외에도 이마트 이갑수 대표 등을 증언대에 세우려 하고 있다.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이마트의 불법파견 논란과 관련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증인 채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토교통위원회와 교육문화체육관광위는 ‘땅콩회항’과 학교 앞 호텔 설립 허용을 골자로 하는 ‘관광진흥법’과 관련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불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위원회의 야당 의원들은 오는 21일 ‘메르스 사태’ 특별국감을 벌이기로 하면서 부실대응 논란을 빚은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인 이재용 부회장을 증인이나 참고인 신분으로 부르기로 했다.
분위가 이렇다 보니 기업 업무와 연관이 없는 상임위에서도 대기업 총수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농림해양수산식품위원회의 새정치연합 측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신청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농민들이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어 FTA의 최대 수혜분야인 자동차산업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회의원들이 국감에서 기업 총수를 부르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론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 라는게 정치권 안팎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가뜩이나 대내외 경영 환경이 벼랑 끝으로 향하는 상황에서 국회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시가 바쁜 기업인들을 불러 하루 종일 기다리게 하거나, 호통을 치고 면박을 주는 구태가 되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78명이던 기업인 증인은 2012년 114명, 2013년에는 150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기업인들의 무차별 증인 채택에 대해 ‘갑질 국회’ 등 비판 여론이 일자 131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지난해 국회 증인으로 출석한 기업인들의 평균 답변 시간은 평균 1분에 불과했다. 기업들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살리기를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는데 국회의원들은 국감장에 앉아서 호통과 망신주기만을 궁리하고 있다. 이제라도 국감이 ‘기업 국감’이란 오명을 벗고 ‘정책 국감’이라는 본연의 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문병도 디지털미디어부 차장 do@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