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죠. 그런데 뒷일이 무서워서."
한 자동차 부품 상장사의 A대표는 최근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상장 후 매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해온 이 회사는 빗발치는 언론사들의 인터뷰 요청을 모두 고사해야 했다.
이유는 하나. 고객사의 납품가 인하 압박 때문이었다. 언론을 통해 "우리 실적이 좋습니다"고 하면 바로 단가를 내리자는 요구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심지어 긍정적인 전망이 담긴 증권사의 보고서조차도 부담스럽다는 게 그의 푸념이다.
사정은 다른 상장사들도 다를 바 없다.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했던 정보기술(IT)부품업체의 한 임원은 인터뷰 직후 전화를 걸어와 "'호실적'이라는 단어는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연구를 통해 원가 절감 시스템을 개발했고, 이를 통해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말한 게 오히려 제 살을 깎아먹는 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렇다 보니 자동차ㆍIT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사상 최고 실적을 이어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납품사들의 이익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미국의 IT 대기업 2곳에 부품을 납품하는 27개 협력업체 중 15곳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지난 2010년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부품 가격을 싸게 가져가면서 원가 경쟁력으로 시장 점유율을 늘려가는 반면, 부품업체들은 계속되는 원가 인하 압박에 시달린 것이다.
경쟁력 있는 중소형주를 발굴해 투자하는 한 펀드매니저는 최근 기자에게 "여러 중소기업, 그중에서도 IT부품업체들을 하청업체로 치부하는 시대는 갔다"는 말을 했다. 부품업체들의 경쟁력이 있기에 대표 IT업체들의 글로벌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이상적인 정의에 그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상생(相生)이라는 말이 '잘 살아 보세'같은 새마을 운동 노래마냥 울려 퍼지고 있지만 정작 협력업체들은 뒷일이 무서워 마음 편히 자기 자랑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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