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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정PD의 Cinessay] 착한 사람들의 순수한 사랑

● 겨울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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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인기를 보면서 사실, 우리는 '착함', '순수함'을 정말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가난만 벗어나면 행복해질 거라 믿고 돈, 돈, 돈 노래를 부르며 열심히 달려왔지만 살만해진 이제, 우리는 너무 외로워졌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릅니다. 예의를 갖춘 세련된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는데 내 명함이 없어져도 이런 관계가 지속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웃'이 없어졌고, '순정'이, '수줍음'이 '기다림'이 없어져버린 요즘,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 자주 듭니다. 젊은이들은 경제력 있는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하고 부모님들은 경로당에 모여 재산과 자식의 효도를 저울질하는 정보를 공유합니다. 남자는 '책임'지기 싫어하고 여자는 '희생'하지 않는 시대…. 옛날이 꼭 아름다웠던 건 아니지만 '무조건' 부모를, 자식을, 연인을 사랑했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며칠전 텔레비전에서 본 '겨울나그네'(1986년작 곽지균 감독) 때문에 마음이 더 아려졌는지도 모릅니다.

부잣집 아들 민우(강석우)와 첼로를 전공하는 다혜(이미숙)는 캠퍼스에서 우연히 만나 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집안이 몰락하면서 민우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경제적으로 몰락한 것보다 민우를 더욱 괴롭힌 것은 출생의 비밀이었습니다. 자신의 뿌리가 남루한 것을 알게 되는건 고통이죠. 여린 민우는 이런 혼란을 이겨내지 못하고 기지촌으로 들어가 허드렛일을 하게 됩니다. 갑자기 사라진 민우 때문에 큰 슬픔에 잠긴 다혜의 곁에는 두 사람의 선배이자 민우와 완전히 다른 성격의 현태(안성기)가 공기처럼 머물게 됩니다. 사실 현태도 다혜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어긋난 인생은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며 완전히 다른 길로 민우를 이끌어갑니다. 이모(김영애)의 사업을 돕다가 교도소까지 가게 되고 기지촌에서 만난 은영(이혜영)의 열렬한 구애를 받으며 아이까지 낳게 됩니다. 하지만 민우는 단 하루도 다혜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이제는 다혜 앞에 나설수 없을 만큼 멀리 가버린 민우지만, 용기를 내어 현태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현태는 다혜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세월이 흘러 다혜와 현태는 결혼을 하고 다시는 다혜 곁으로 갈수 없게 된 민우는 자살로 세상을 버립니다.



1986년 개봉 때도 봤고 이후에도 여러번 본 영화인데도 이번에는 마지막 장면이 참 놀랍게 다가왔습니다. 세상을 떠난 민우의 아들을 다혜와 현태 부부가 따뜻하게 거두는 모습입니다. 그 아이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그저 '옛친구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애정 가득 담긴 마음으로 아이를 받아들입니다. 과연 요즘도 저럴수 있을까? 아니, 친척의 아이라도 저렇게 흔쾌히 맡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그만큼 그 시절의 사람들은 착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 내가 사랑했던 친구의 불행을 자신의 일처럼 가슴 아파해하고 고통을 나누려는 그 따뜻함에 눈물이 납니다. 나의 슬픔이 약점이 되버리고 나의 낙오가 다른 사람에게는 기쁨이 되는 냉정한 시대에 민우와 다혜, 현태, 은영까지…. 그들의 품어주는 사랑이 진정 그립습니다. 비가 새서 양동이로 물을 받아도 행복했던 새댁은, 자식은 물론이고 동생들까지 공부시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야간작업을 마다하지 않던 우직한 가장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요.

조휴정 KBS PD (KBS1라디오 '생방송 오늘, 이상호입니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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