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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흔적, 여전히 찾아볼 수 없었다

'지옥섬' 日 군함도 가보니

'징용정책 인정' 조건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됐지만

섬 어디에도 관련설명 없고 해설사들도 '모르쇠' 일관

근대화 시설 자랑 열올려

군함도
군함도 방문객 견학 광장에서 바라본 건물. 사진에 보이는 계단은 지하 600m까지 갈 수 있는 갱도의 입구로 이어진다. /=연합뉴스
바다에서 바라 본 군함도의 모습. /연합뉴스


마치 바다에 떠 있는 한 척의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라고 불리는 하시마로 가는 입구인 나가사키항.

지난 22일 일본 규슈(九州) 나가사키(長崎)현에 위치한 나가사키항에서 바라본 바다는 잔잔했다. 하시마 앞 파도가 거세 접안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일이 많다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걱정했지만, 이날 바다뿐 아니라 하늘도 고요했다. 오전 8시53분께 동북아역사재단과 관계자들과 함께 나가사키항에서 하시마까지 배를 띄우는 회사 중 한 곳인 아마사해운주식회사의 배에 몸을 실었다. 200석이 넘는 좌석에 90여명의 관광객들이 타고 있었다. 하시마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평일에도 자리가 꽉 찬다는 가이드의 설명과 달리 이날 관광객 수는 많지 않았다.

나가사키항에서 18km 떨어진 하시마까지 가는 내내 해운회사 직원은 하시마와 하시마 주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미쓰비시주식회사의 크레인 등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이 하시마에서 강제로 일했다는 사실은 들을 수 없었다. 하시마는 한국과 중국 청년들이 강제로 끌려와 희생당했다는 내용을 언급하는 조건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섬이다. 지난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일본 정부대표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며 "인포메이션(정보)센터 설치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30여분 넘게 달리자 하시마가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남북 약 480m, 동서 약 160m, 둘레 약 1,200m의 하시마를 바다에서 바라보니 군함도라는 별명이 와 닿을 만큼 한 척의 거대한 배처럼 보였다. 접안을 하고 내리자 해운회사 직원은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초록색 비표를, 일본인 관광객에게는 붉은색 비표를 나눠줬다.

서로 다른 색깔의 비표를 받고 서로 다른 순서로 섬 관광을 하는 등 섬 내에서 일본인과 외국인은 철저히 구분됐다. 지난 8월 하시마를 방문했다는 한국인 가이드는 "지난 번 왔을 때는 이렇게 그룹을 나누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사실을 언급하는 조건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사실을 의식해 취해진 조치가 아닌가 싶어 섬 내에서 하시마 해설을 맡은 일본인 자원봉사자에게 물어봤지만 "하시마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 나눴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섬 투어는 3곳에서 진행됐다. 지하 1km가 넘는 해저 탄광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광부들이 작업 후 씻었던 목욕탕 등이 있던 시설과,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가 세워진 곳, 하시마에서 석탄이 발견된 장소와 학교 등 기반시설이 있었던 곳 등이다. 이렇게 3곳에서 일본인 자원봉사자 3명이 각각 설명을 맡았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머물렀던 곳은 공사중이란 이유로 들어갈 수 없었다.

해설사들은 하시마의 근대화 시설을 자랑하는 데 집중했다. 1초에 8m미터나 내려가는 고속 엘리베이터, 최신식 아파트 등. 강제로 끌려와 지하 1km나 내려가 작업을 해야 했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설명이나 그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한 자원봉사자는 "1958년 일본에서 텔레비전 보급률이 20% 수준이었는데 여기 군함도는 대부분 보급이 됐다. 그래서 여기는 꿈의 섬이라고 불릴 정도였다"며 "선조들의 노력이 묻어 있는 곳이어서 세계문화유산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시간 가까이 섬 안을 둘러 본 후 나가사키항으로 출발했다. 군함도 주변에서 군함도에 대한 설명을 십여분 이상 이어가면서 돌아오는 시간은 갈 때보다 30분 가까이 늘어났다.

해설을 맡은 한 자원봉사자에게 외국인 강제징용 사실을 왜 언급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회사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강제징용)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영미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장은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을 할 때 우리 선조들이 강제 징용을 통해 이곳에 왔음을 명시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나가사키항에 있는 하시마 모형에 이 같은 문구를 넣은 설명문을 만드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나가사키=박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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