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건강하기를 소망한다. 여기서 건강이란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이다. 몸의 건강에는 적당한 양식이 중요하다. 양식이 부족하면 영양실조로 질병이 오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반대로 영양이 과다해도 역시 여러 질병이 찾아와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건강한 몸은 적합한 양식을 섭취할 때 주어진다.
영국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에는 음식점이 전국적으로 참 많다. 24시간 운영하는 음식점까지 있다. 주문 배달 체계도 잘돼 있다. 방송도 소위 '먹방'이 인기가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휴대폰을 누르면 음식이 배달된다. 이러한 사회 환경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금식'의 건강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 우리 몸은 청소를 하는 것이므로 이때가 건강해지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녁을 금식하거나 아침을 금식하는 것을 권장한다. 사실 저녁을 먹지 않고 잘 때면 배고픔에 잠이 잘 안 오지만 아침에 일어날 때 개운함이 상대적으로 크다. 정신도 맑음을 느낀다. 배고픔의 건강학이다. 지속하기는 힘들 수도 있지만 '소식(小食)' 아니면 '배고픔'으로 저녁과 밤을 맞으며 잠자리에 드는 것이 건강에 좋다. 배를 가득히 채우고 자는 것보다 뭔가 아쉬운 상태에서 자는 것이 건강에 좋다. 이것을 굳이 딱딱한 말로 표현하면 '절제'다.
조금 더 생각을 깊게 해보면 마음도 마찬가지 원리를 갖고 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욕구를 다 채우다 보면 마음의 건강을 잃어버린다. 안타깝게도 유흥업소의 현란한 네온사인들은 어디를 가든 현란하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마음 안 '육체의 정욕'을 충족시키는 곳들이다. 타락한 본성을 지닌 인간이 있는 한 인간의 본능을 자극해 돈벌이를 하는 문화다. 역시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는 절제가 필요하다. 아쉬움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배고픔의 건강이 필요하다. 이것을 '금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성경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들을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베드로전서 2장11절)"고 말한다. 여기서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는 말의 의미는 육체의 정욕을 마음이 요구하는 대로 다 채우지 말고 아쉬움의 상태로 유지하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 2절)"에서 보면 아쉬움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인간을 건강하게 가꾸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아쉬움의 상태로 영혼의 양식을 채울 때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을 경험한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금식을 하신 후 유혹을 받고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복음 4장4절 일부)." 인간은 육체의 정욕의 유혹을 절제하며 창조주의 말씀을 먹을 때 진정한 삶의 행복에 이르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유흥가를 드나들면서 육체의 정욕을 충족하는 것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 늘 아쉬운 상태로, 배고픔의 상태로 유지해야 건강해진다. 이는 가정을 건강하게 만든다. 마음과 육체의 절제에 실패해 불륜에 빠진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뿐 아니라 가정에 고통을 주며 가정을 파탄하게 한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든 적게 가진 사람이든 이러한 이혼은 결코 행복의 길이 아니다. 간혹 국민에게 본이 돼야 할 지도층이 이혼을 발표하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이 더 크다. 그 가정이 겪을 아픔도 느껴지고 우리 사회의 건강까지 해치게 되는 것 같아 아쉽다. 이제 묵은 해가 지나갔다. 새로운 해를 맞았다. 새해에는 모든 국민의 영육이 건강하기를!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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