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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번 가뭄은 솥뚜껑이 아니고 고래

변희룡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전 한국기상학회장


"수령님만 믿으세요" 해서 믿었더니 300만명이 생명을 잃었다. 그 일에 고난의 행군이라는 멋진 이름까지 붙이더라. "학생 여러분 동요하지 말고 자리에서 기다리세요." 이 무책임한 방송이 우리 아이들 생명을 많이도 빼앗아 갔다. 지난해 팽목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최근의 중동호흡기증후군(MRES·메르스) 파동도 처음부터 깜짝 놀랐다면 쉽게 종료됐을 것이다. 대형 사고의 위험이 보이면 놀랄 줄도 알아야 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만 봐도 놀란다지 않는가.

8년 전 경고 불구 정부는 모르쇠

무척 위험한 가뭄이 2015년에 닥친다는 경고가 8년 전부터 있었다. 월간지·일간지 등에서 특집을 포함해 다양하게 다뤘지만 정작 정부만 모르쇠였다. 가뭄이 닥치는 것을 경계할 수 있는 기법이 만들어진 것은 무려 17년 전이다. 그동안 6년 주기의 가뭄만 세 번 지나갔다. 그때마다 가뭄이 온다고 경고됐고 실제로 왔는데도 대응은 항상 구태의연이었다. 먼저 전 국민의 온정이 가뭄발생지로 쏟아지더라. '급수차·양수기·생수 보내기 및 군대 동원하기(줄여서 급양생군)'는 그래도 국민을 단합시키는 긍정적 측면이라도 있다. 가뭄이 조금 깊어지면 각 지방자치단체와 개인은 '국가 예산 더 많이 따내기' '재난지역 선포 촉구하기, 피해실적 부풀리기, 보상액 높이기(줄여서 국재피보)' 등등 파렴치한 이전투구에 전력을 집중하더라. 국가 예산 더 많이 훔쳐온 자가 영웅이 되고 경쟁하다 보니 이웃 지자체가 원수가 되더라. 정부는 해갈되는 대로 영구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노라는 약속을 남발하더라. 모 장관은 매년 500억원씩 연구에 투자해 반드시 인공강우를 성공해내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분의 열정마저 빗소리 한 번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라.

지금 중부지방에 가뭄이 심각하다. 지금 살아 있는 세대는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심한 가뭄이라 해도 정부는 모르쇠였다. "이번에는 자라나 솥뚜껑이 아니고 진짜 고래" 라고 해도 모르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심할 것이라 해도 모르쇠. 그래서 올해도 내년도 '급양생군 국재피보'만 계속될 모양이다. 오는 2025년인 정점까지 가뭄 강도가 강해질 것이라 해도, 2041년까지 빈번할 것이라 해도 모르쇠이니 여전히 '급양생군 국재피보'만 반복될 모양이다. 모든 과학이 다 발달하는데 왜 이 방면만 이럴까.



최소한 가뭄이 발생할 기미가 보이면 특보라도 발표하자. 한반도는 강수량이 여름에 집중되므로 10월에서 다음해 6월까지의 가뭄 발생 여부는 9월 중순에 결정돼버린다. 이를 이용해 특보할 수 있는 학술적 기반은 마련된 지 오래다. 지금까지 적중한 기억이 거의 없는 장기예보는 십수 년 넘게 계속 발표하면서, 가뭄보다 피해가 훨씬 미약한 강풍·호우 등 11개 재해는 수십 년이나 기상특보로 발표하면서, 국가안보와도 직결되는 가뭄을 특보규정에서 빼놓은 것은 담당자들의 직무유기다.

주무부처 밝히고 기상특보 강화해야

가뭄의 강도를 계량화하는 일도 정부가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감정 조장하는 '국재피보'를 막을 수 있다. 가뭄이 발생하면 어디가 주무부서인지 좀 알자. 국민안전처가 가뭄에 대비하는 부서인 줄 알았는데 복잡한 설명과 함께 아니라고 한다. 그럼 어디인가. 부처 간 미루기 핑퐁만 하지 말고, 좀 쉽게 설명하고 나타나서 일 좀 해보라. 현실적 문제는 무엇이고 장기적 대책은 무엇인지 밝혀보라. 이번에는 솥뚜껑도 아니고 자라도 아니고 고래라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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