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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하지 않는 한' 미래는 없다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지금에 와서도 뚜렷한 정책은 없고 막연한 기대만으로 가득한 대통령 선거 탓인지, 국제신용등급이 올랐다는데도 전혀 서민들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답답한 경제 탓인지, '미래'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범람 중이다. 인생 게임을 설계하는 청장년이나 신상품을 출시하는 기업이나 나라를 책임져 보겠다는 정치인이나 관료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낡은 과거를 일신해 새로운 미래를 기획해 보여 주겠다는 야심이 사회 곳곳에 팽배하다.

'미래'라는 말은 지난주 안철수 후보가 "미래는 이미 와 있다.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미국의 과학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말을 인용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한국 사회를 나타내는 한 상징으로서 그 절정에 다다랐다.

그러나 새벽 직전 가장 어두운 밤에 더욱 빛을 그리워하듯이, 미래라는 말 역시 앞날이 가장 캄캄한 순간에 갈구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그 말에나마 손쉽게 희망을 담아보는 것은 고생스럽기만 할 뿐 마음 붙일 데가 그만큼 드문 까닭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시간(현재)의 현저한 불우를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미래)의 희미한 기대로 보상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를 이야기하려는 사람은 다가올 빛과 영화와 행복을 웅변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어둠과 고생과 불우를 자기 일로 삼아야 한다. 실업과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을 왕복하는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는 미래는 없다. 퇴직의 공포와 자영업의 불안과 하우스 푸어의 고통에 시달리는 장년들에게 행복한 노후를 부여하지 않는 미래는 없다. 글로벌 경쟁과 대기업의 탐욕 속에서 침몰하는 중소기업과 골목상권에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지 않는 미래는 없다. 북한 출신 한국인, 다문화가족ㆍ동성애자ㆍ장애인ㆍ노인 등 약자와 소수자의 생존에 필요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지 않는 미래는 없다.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오직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관심 속에 시들어가는 순수 문화예술을 보호하지 않는 미래는 없다.

우리 곁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전망'이라고 한다. 먼 옛날 바닷속에서 어떤 물고기들은 단지 헤엄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앞지느러미를 펄럭이면서 부지런히 근육을 붙였다. 나중에 그들의 후손은 육지로 올라와 결국 앞발을 가진 육상 생물이 됐다. 진화는 미래에 올 육상 생활을 선언하는 데 있지 않고 물속을 누비며 열심히 앞지느러미를 놀리는 데 달려 있다. 우리 사회에 미래를 퍼뜨리고 싶다면 장미가 아니라 빵을 이야기해야 한다. 뚜렷한 전망을 가지고 현재의 사태들 속을 헤엄치며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문제 없는 답안지가 아니라 답안지 없는 문제를 꺼내드는 것,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미래는 아마도 그 속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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