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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08> 극단의 그늘


‘나, 절대로 그런 일 한 적 없습니다. 내 손에 장을 지질게요.’ 일상생활에서 한 번 쯤 들어봤음 직한 말입니다. 얼마나 억울한지 온몸으로 쏟아내는 극단적인 표현들을 말입니다. ‘하늘에 맹세코…’와 같은 수사도 비슷한 상황에서 쓰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말의 깊이가 더해져 갈수록 그 사람을 못 믿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돈을 받았다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 ‘돈을 받았으면 목숨을 걸겠다’와 같은 말들을 더 이상 국민들은 신뢰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한편으로는 한탄스럽기까지 합니다. ‘이제 목숨도 허언으로 걸 정도로 우리 사회가 얄팍해 졌구나’ 하고 말이죠.

가만 보면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한 사람이든 불특정 다수이든 협상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면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선 아주 센 표현을 통해 상대방의 주의를 분산시킵니다. 사건이 일어난 실체적 진실보다는 누군가의 입에서 극단적인 약속이나 다짐 등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이지만, 일반적으로 많은 이들은 당황하게 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에 정서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절박했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말이죠. 화도 조금씩 누그러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 조차도 점점 잊어버리는 효과를 낳기도 합니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극단적 수사를 발동하는 사람들은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양치기 소년 효과’ 때문입니다. 깊은 고민 없이 자주 센 표현을 쏟아내는지 경험으로 알게 된 후부터는 그의 간절함보다는 부박함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일본 정치를 잘 아는 지인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일본인들은 ‘망언’을 쏟아내는 정치인들이 매우 많아서 그들이 아무리 무지한 발언을 쏟아내더라도 양치기 소년처럼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우스운 것은 그것을 정치인들 스스로 파악해 누군가에겐 극단적인 말이 통하니 좋고, 누군가에게는 안 통하지만 별로 문제가 안되니 좋다는 ‘헛소리’까지 늘어놓는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그들의 망언 때문에 마음고생을 해야 하는 인접 국가 입장에서는 ‘웃픈’(웃기고 슬픈) 현실입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마저 일본 정치인들을 닮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사망하자 그에 의해 긴 꼬리가 밟힌 것으로 의심되는 이완구 총리는 ‘내가 정말로 성씨의 돈을 받았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굳이 구체화시켜 말하자면 ‘목을 매달겠다’ ‘할복하겠다’는 일본 사무라이들의 섬뜩한 각오를 연상케 하는 맥락입니다. ‘굳이 이런 표현을 써야만 했나’ 극단적인 표현의 그늘만 뇌리를 스치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닐 테지요.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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