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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64> '받아쓰기'


사람은 무엇인가에 대해 자기가 잘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남의 견해나 행동을 모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밴드왜건’(Bandwagon) 효과라고 하죠. 부화뇌동 효과 또는 동조 효과라고도 사회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왜 남을 따라서 할까? 여기에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우선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의 행동은 집단화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행위 자체에 정당성이 부여됩니다. 나 혼자 튀어서 덤터기를 쓸 것 같은 위험이 없는 것이죠. 그 다음으로는 왠지 자기가 갖고 있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것 같은 묘한 기대 때문입니다. 이를 가리켜 ‘상보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그를 닮아가거나 아니면 흡수함으로써 행동을 변화시켜 나갑니다. 이에 기반하여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사회적 학습 이론(Social learning theory)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여러 명의 행동을 따라하면 안전하다는 믿음. 그로 인해 인류 역사에서 나치(Nazi)가 등장하고 군국주의가 판쳤던 세월을 기자는 떠올립니다. 미래의 전망이 불투명하고, 현실이 너무도 각박하게 느껴질 때,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결정 체계를 잠시 정지시켜 두고 남에게 그 책임을 넘겼습니다. 그때마다 숱한 독재자들, 지배 세력들은 없는 꿈을 만들어 주겠다며 대중을 호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규범과 원칙에 따르도록 강요했죠. 유대인 학살이나 대규모 침략 전쟁 같은 엄청난 사태가 사람들에 의해 자행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성 관념으로는 그것이 옳지 않음을 번연히 알면서도, 자기가 잘 모르는 남의 의견 속에 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윤리적 판단력은 잠시 접어두고, 집단의 광기와 폭력 속에 젖어드는 군중의 모습을, 역사는 기억하고 또 개탄해 왔습니다.

기자가 속해 있는 언론 산업이라는 필드도 이런 집단의 ‘밴드왜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 흔한 ‘받아쓰기’ 관행 때문입니다. 저널리스트는 정말 바쁜 직업입니다. 근본적으로 서로 연관성이 적은 동시다발적인 사건들을 기사로, 또는 칼럼으로 처리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는 일입니다. 그 때문에 현장에서 어떤 상황과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지 집중해서 포착한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보통 취재원은 그럴 때마다 ‘보도자료’나 ‘참고자료’ 같은 것들을 주면서 콘텐츠를 만들어 내기 편하게 도와 줍니다. 기자가 아무런 가감 없이 그 소스를 그대로 가져다 쓰면 ‘받아 쓰기’가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다양한 사회적 주체를 향해 중립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해야 할 순간을 놓치기도 하죠. 한 번은 어떤 언론에서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을 기사로 쓰다 잘못된 내용을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다른 매체의 기자들이 그 기사를 보고 비슷한 소재로 내용을 작성하면서 ‘잘못된 표현’이 그대로 확산된 것이죠. 급기야는 현장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어느 언론인의 경종에 의해 집단이 저지른 실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사실 이 사태는 우리 언론의 문화와도 연관성이 매우 큽니다. ‘특종은 못해도 절대 낙종은 하지 말아야 한다’, 즉 중간 이상은 해야 한다는 압박이 집단적 과오로 이어진 것이죠.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고, 때로는 자신의 표준을 넘어서 새로운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개인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 자체가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생각할 시간도 필요합니다. ‘밴드왜건’의 강박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주체적 판단력부터 가져야 합니다. 어떤 근거를 들더라도 받아쓰기가 정당화될 수는 없으니까요.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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