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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의류업을 하는 A사 임원은 벤틀리를 몰고 다닌다. 벤틀리는 가장 많이 팔린다는 '플라잉 스퍼' 가격이 약 3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돈은 문제가 안 된다. 회사는 중소업체에 불과하지만 법인에서 리스를 통해 구입하는 탓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리스로 하면 비용을 인정받을 수 있는데다 어차피 회삿돈이니 무조건 수입차로 타고 다니는 이들이 많다"며 "중견기업만 해도 그렇지 않지만 회사가 영세할수록 이런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우리나라만의 일그러진 자동차 문화에 수입차 리스가 폭증하고 있다.
'자동차=신분'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인식에 비용은 내 돈이 아닌 회삿돈으로 처리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더해지면서 초고가 수입차 구매고객의 최고 96%가 법인인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26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수입차 신규 구입고객 가운데 법인 수는 3만9,17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만1,126건과 비교해 무려 25.8%나 늘었다.
전체 신규 고객에서 법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꾸준히 늘고 있다. 수입차의 대중화가 상당히 이뤄졌음에도 법인 비중은 5월 말 현재 40.9%로 전년 대비 0.2%포인트 높아졌다.
법인고객의 대다수는 리스 등을 통해 차를 사는 경우다.
법인에서 수입차를 사서 회사 자산으로 보유하는 사례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는 게 수입차업계의 설명이다.
특히 고가 자동차일수록 법인 구매 비율이 높다. 영국 여왕이 타는 전통의 초고가 브랜드인 롤스로이스는 올 5월까지 국내에서 팔린 28대 가운데 27대가 법인 몫이다. 거의 모든 차가 법인용이라는 얘기다. 롤스로이스의 베스트셀링 모델인 '고스트'는 대당 가격이 4억원대이고 최고가인 '팬텀'은 무려 6억9,000만원에 이른다.
벤틀리도 상황은 비슷하다. 최고급 브랜드임을 자랑하는 벤틀리도 올 들어 판매된 차 196대 중 171대가 법인용이다. 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취급하는 랜드로버는 62.5%, 메르세데스벤츠도 판매량의 58.8%가 법인이 사들였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입차가 과시의 대상이 되면서 리스를 포함한 법인 판매는 수입차 위주로만 시장이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국내에서 가장 판매량이 많은 현대ㆍ기아자동차의 경우 법인 판매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걱정하는 대기업 정도를 제외하고는 국산차보다는 수입차를 선호하는 탓이다. 현대ㆍ기아차의 법인 리스를 담당하는 현대캐피탈의 올 1ㆍ4분기 법인 신규 리스는 1만200건으로 지난해 1만2,000건보다 되레 감소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법인의 규모와 목적에 관계없이 수입차 판매가 증가하는 것은 해당 업체 입장에서나 국내 자동차 산업에도 좋지 않다"며 "국산차의 판매가 줄면 내수가 침체되고 중장기적으로 일자리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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