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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캔터 피츠제럴드社 재기에 성공
입력2002-09-11 00:00:00
수정
2002.09.11 00:00:00
9.11테러 최대피해 최악시련 딛고 1년만에 재기"준구 오빠. 우리는 한번도 오빠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게 한없이 아쉬워요. 그날 아침 독감이 심하게 걸렸는데 왜 굳이 출근을 했나요. 차라리 하루 전날에 발표된 해고자 명단에 포함되는 것이 낳았을텐데요."
지난해 9월 11일 채권거래회사 캔터 피츠제럴드에 근무하다 테러 공격으로 숨진 한국교포 1.5세 강준구씨(당시 34세)의 여동생들은 회사 웹사이트에 이렇게 추도사를 썼다.
무역센터 북관 101층에서 105층을 본사로 사용하던 캔터 피츠제럴드사는 이날 아침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658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이 숫자는 뉴욕시가 공식 발표한 사망자 2,801명의 4분의1로, 뉴욕 금융기관중에서 가장 많다. 당시 전체 직원 970명의 3분의2에 해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은 테러 공격 지점의 위층에 있어 대피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테러의 최대 피해 회사로 사건 직후 파산 직전에 이르렀던 캔터 피츠제럴드는 1년만에 다시 뉴욕 월가의 일류 채권 거래회사로 일어섰다. 몇 안되는 생존자들의 눈물겨운 재기 노력과 희생자 유가족들의 뜨거운 격려 때문이다.
캔터사는 사건 직후에 미드맨해튼으로 이사, 직원을 새로 뽑고 시스템을 정상 가동, 지난 1년동안 1억 달러의 수익을 냈다. 또 미국 국채(TB) 시장에서 3조 달러를 거래함으로써 전자 채권거래의 선두주자 자리를 되찾았다.
캔터사는 소설 '거짓말쟁이의 포커판'을 연상케 하는 뉴욕 채권시장에서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탐욕스런 회사로 악명이 높았다. 하워드 루트니크 회장은 지난 96년 창업자인 버니 캔터가 병들었을때 경영권을 빼앗은 이력의 소유자였다.
테러로 본사와 부하를 잃자, 그는 순직 직원에 대한 보상을 우물쭈물하다가 유가족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루트니크 회장이 곧 마음을 정리했다. 그 스스로가 동생과 친구를 잃었고, 생존자와 슬픔을 함께 하는 것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희생자 구제기금을 조성하고, 앞으로 5년간 회사 수익금의 4분의1을 유가족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다행히 테러 이틀후에 전산 시설이 가동되고, 희생자를 위해 일하겠다는 이상주의자들이 입사하고, 살아남은 직원들이 채권시장을 상대로 전의를 불태웠다.
캔터사의 희생자 중에 한국 교포가 2명 포함돼 있다. 강준구씨는 4남매의 외아들로 14세 때에 이민해 증권 애널리스트로 일했고, 파멜라 추씨(당시 31세)는 두살 때 미국에 건너와 10년간 캔터사에 근무하면서 포트폴리오 담당 부사장까지 올랐었다.
사고 1주년을 맞는 11일 캔터사는 하루 휴무하고, 살아남은 직원과 유가족이 맨해튼 센트럴 파크에서 별도의 추도식을 가졌다. 루트니크 회장은 "우리는 지난해 9월 12일 새로 태어났다"면서 "그러나 영원히 테러 희생자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김인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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