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지 오래인 통상임금 소송은 이제 공공과 민간,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번지는 분위기다.
재계는 통상임금 범위를 넓히면 당장 추가 부담 비용만 38조가 넘을 것이라며 경악하고 노동계는 마땅히 챙겨야 할 몫이라고 주장한다.
또 타임오프 시행 3년을 앞두고 50인 미만 사업장과 전국 단위 분포 사업장에 대해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늘리는 방안이 결정됐다. 노동계는 겉으로는 아쉬워하면서도 속으로는 얻을 만큼 얻었다는 입장인 반면 재계는 과도한 조치라며 울상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근로시간 단축과 파견법 위헌 논란, 최저임금 등 매 현안마다 노동계와 재계는 미리 입이라도 맞춘 듯 반대 방향으로만 달려가고 있다.
이렇게 사방팔방에서 아우성이고 이해당사자들 간의 갈등 수위는 높아져 가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뒷짐만 진 형국이다. 한 발 물러선 채 신의 한 수를 예비하며 저 멀리 통찰하는 것이 아닌 정말 어찌할 바를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시간제 일자리 창출과 육아휴직 확대 등 대책을 쏟아내기 바쁘지만 격렬하게 맞부딪히는 노사 현장에서 중재의 지혜를 모으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갈피를 못 잡고 있으니 지난달 말 노사정 대타협으로 일자리 협약을 체결했다는 자랑스런 발표가 무색하게 노사 충돌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갈등은 인간 사회 어디에나 존재한다. 티격태격 부딪히다가도 끝내 갈등을 봉합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면 애써 갈등을 회피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을 통해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헤치지 못한다면 갈등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갈등은 이미 시작됐다. 남은 것은 정부의 몫이다. 법과 상식을 토대로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챙길 것은 챙기도록 정부가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가 영리한 셈법으로 노사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대차대조표를 제시할 때 노사도 닫은 귀를 열고 째려보는 눈을 바로 뜰 수 있다.
이걸 못해내면 올 여름 국민의 눈과 귀는 노동자들의 붉은 깃발과 기업들의 앓는 소리를 보고 듣느라 또 바람 잘 날이 없을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