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31일 제과업계의 시선이 일제히 오리온으로 쏠렸다. 지난 해 성적표가 기대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오리온의 매출은 2조4,630억원. 2013년(2조4,852억원)보다 줄었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2,790억원, 1,742억원으로 7.56%, 8.74% 늘었다. 내수 침체와 세월호 참사 등의 영업 악재로 점철된 한 해였기에 오리온의 깜짝 실적은 더욱 빛났다. 스낵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회복되고 오리온스낵인터내셔널(OSI)과 아이팩 합병으로 비용 절감 효과를 본 덕분이었다. 제과업계의 한 관계자는 "허인철 부회장이 지휘봉을 잡자마자 체질 개선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허 부회장의 효율 경영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리온에 이른바 '허인철(55·사진)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허 부회장의 이름 앞에 항상 따라 붙는 수식어는 'M&A(인수·합병)의 귀재' '재무통'. 신세계 재직 시절인 2006년 월마트 인수를 한 달 안에 마무리 짓고, 2011년엔 신세계의 기업 분할을 진두지휘하는 등 오늘날 신세계그룹의 안정적인 경영 기반을 마련한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이처럼 화려한 전력을 지닌 허 부회장이 지난해 7월 오리온에 합류하면서 업계 안팎의 기대감은 컸고 허 부회장의 능력은 1차적으로 영업 실적을 통해 입증됐다. 기업의 추가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하는 주가 역시 마찬가지. 오리온의 주가는 허 부회장 영입 이후 무려 40% 가까이 급등했다. 지난 3일엔 124만3,000원을 찍으며 52주 신고가까지 경신했다. 증권가에선 조만간 140만원대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박신애 대신증권 연구원은 "오리온은 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성 제고는 물론 M&A를 통한 신규 카테고리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며 "OSI와 아이팩 인수로 각각 50억원, 20억원의 영업이익 증가가 기대되는 만큼 성장성이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허 부회장은 지난 하반기 내실 다지기에 주력했다. 오리온으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조직 쇄신 작업부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메스를 댄 건 회장실 폐쇄로 책임경영 강화와 조직 슬림화를 꾀했다. 또 오리온과 OSI를 합병하면서 해외법인 지배구조 간소화와 비용 개선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이전까지 오리온은 해외 투자 건에 관해 두 개 법인이 따로 작업하면서 중복 비용이 발생했다. 하지만 하나의 회사로 합치면서 불필요한 비용 낭비가 사라졌다. 아울러 오너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아이팩까지 합병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고배당 등 논란도 잠재웠다.
이마트 대표 시절 최우선으로 고려했던 소비자 만족도 제고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허 부회장은 제과업계의 오랜 논란거리인 '질소 과자' 문제 해결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대표 제품인 마켓오브라우니의 내용물 갯수를 7개에서 8개로 늘렸고, 썬·눈을감자 등의 제품은 내용물의 양을 5% 늘리는 '착한 포장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포카칩·참붕어빵 등 다른 제품 16종도 포장재 속 부피의 35%를 차지하던 '빈 공간'을 25% 아래로 줄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착한 포장 프로젝트는 썬·포카칩·오감자 등의 매출 향상으로 나타났다. 오리온은 여세를 몰아 지난 2월부터는 포장 디자인을 단순화해 잉크 사용량을 연 88톤으로 줄여 원가를 절감하는 2차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제과업계와 증권업계에서는 오리온의 변화가 시작 단계라고 입을 모은다. 그가 회의 때마다 효율 경영을 강조하고 있는데다 향후 굵직한 M&A에 나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오리온이 언제든지 M&A에 나설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실탄'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또한 오리온이 내년이면 창립 60주년을 맞는 만큼 허 부회장이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부문에서도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박 연구원은 "작년 중국 선양공장 완공으로 동북부까지 영업 영토를 확대했고 2018년에는 쓰촨성 등 중서부 지역 진입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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