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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 자유인 김삿갓의 발자취


오랜만에 강원도 영월 김삿갓 유적을 찾았다. 풍류시인 김삿갓이 고달픈 방랑의 발길을 멈추고 영원히 잠든 김삿갓 묘역으로 오르는 길가에 수많은 김삿갓 시비와 기념비가 서 있고 서낭당 한 채도 있다. 서낭당 앞에서 갈라진 오른쪽으로 오르면 김삿갓 묘요, 왼쪽 산길로 오르면 어둔리 선락골을 지나 선래골 김삿갓 일가가 살던 집터가 나온다.

올해로 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이 세상을 떠난 지 150주년이 된다. 김삿갓은 순조 7년(1807) 음력 3월13일에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 철종 14년(1863) 음력 3월29일에 전라도 화순에서 죽었다. 죽장 짚고 미투리 신고 한평생을 떠돌아다닌 천재시인 김삿갓, 파격적 시풍(詩風), 예상을 뛰어넘는 기행(奇行)으로 가는 곳마다 전설을 남긴 김삿갓, 그는 행운유수처럼 이 땅의 산수와 저자 간을 마음대로 넘나든 자유인이었다.

영월 유적지에 대역자손의 한 서려

김삿갓이 평생을 해학과 풍자로 일관한 방랑시인이며 기인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한 점 뜬구름 같고 한 줄기 바람 같았던 그의 기구하고 불행했던 한 삶의 자취를 똑똑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그의 일생은 널리 알려진 명성과는 달리 신비에 싸여 있어 강원도 영월 땅에 그의 일가가 숨어살던 집터와 묘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31년 전인 1982년이었다.

필자가 처음으로 김삿갓 묘와 집터를 답사한 것은 1984년 여름이었다. 김삿갓 묘를 발견한 영월의 향토사학자 고(故) 박영국 선생과 함께 이미 오래 전에 폐가가 돼버린 김삿갓의 집터에서 그의 어머니ㆍ부인ㆍ며느리 등 불행한 여인 3대가 눈물과 한숨을 섞어 곡식을 빻았을 디딜방아를 보고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그때 길 같지도 않던 7㎞의 진입로가 매끈한 아스팔트 포장길로 변했고 면 이름도 하동면에서 김삿갓면으로, 골짜기 이름도 와석리계곡에서 김삿갓계곡으로 바뀌었다.

당대의 세도가문 안동 김씨 집안에서 태어난 김삿갓이 고달픈 심신을 이끌고 이 땅의 산굽이며 물줄기를 이리저리 휘감아 도는 방랑길에 나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최근까지는 김삿갓이 스무 살 때 영월 동헌 백일장에서 홍경래란 때 선천부사로 있다가 반군에게 항복, 역적으로 처형당한 조부 김익순을 욕한 시를 지어 장원한 것이 계기라는 설이 정설처럼 굳어져왔었다. 김삿갓 유적지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아직도 그런 잘못된 내용이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는 사리에 맞지 않는다. 비상한 천재였던 김병연이 스무 살이 넘도록 치욕스러운 집안의 내력을 전혀 몰랐을 리가 없다. 할아비가 처형당하고 집안이 망할 때 김병연의 나이 여섯 살이었으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았을 것이고 그 뒤 가족이 이리저리 떠돌며 숨어살던 일이며 아버지가 울화병으로 젊은 나이에 죽은 이유를 알고도 남았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할아비를 '만 번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고 매도했을 턱이 없지 않은가.



세상잡사 초탈 구도행 흔적 그대로

김삿갓의 가출과 방랑은 경천위지 제세구민의 빼어난 재주를 타고났건만 그런 출신성분 때문에 구만리 같은 앞길이 막혀버린 좌절감과 울분이 원인이 됐을 것이다. 김병연이 가출을 단행한 것은 맏아들 학균이 태어난 직후인 22세 때. 그 뒤 김삿갓은 57세로 죽을 때까지 35년간을 방랑으로 보냈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떠도는 인생, 세상잡사 초탈해 풍류 한마당으로 천지간을 배회하니 신선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신선이든 시선(詩仙)이든 지상에 머무는 동안은 먹어야만 했으므로 때로는 이 마을 저 마을에서 문전걸식도 했고 때로는 산사(山寺)에서 공양 신세를 지기도 했다. 어쩌다가 운율깨나 아는 주인을 만나면 제법 그럴듯한 환대도 받았을 것이며 또 기막히게 운수대통한 날이면 풍류를 알아주는 기생으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왕조 말 어지러운 시대의 그늘에서 좌절과 실의를 딛고 죽을 때까지 외로운 발길을 멈추지 않았던 김삿갓의 방랑, 그 또한 자기 나름대로 고달픈 영혼의 구원을 위한 구도행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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