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한국 기업에 대해 철강 등 기반시설 공사 참여 의사를 타진한 것은 외국인자금 유치를 통해 최근 국제유가 추락으로 인한 경제난을 타개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오는 6월 말로 연장된 서방과의 핵 협상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경우 하산 로하니 이란 정권의 경제개혁 드라이브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란 정부의 재정적자 증가나 인프라 예산 감소 등을 감안하면 로하니 정권은 합작사 설립 등을 통한 외국인직접투자(FDI) 방식을 더 선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하니 대통령이 지난 2012년 6월 대선에서 예상을 뒤집고 당선된 것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결집된 결과였다. 집권 1년6개월 동안 성과도 속속 나타났다. 물가상승률은 과거 35%에서 현재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12~2013년 회계연도(3월 결산)에 2년 연속 마이너스를 보였지만 올해 1.5%, 내년 2.2%를 기록할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예상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지난해 6월 이후 반토막 나면서 미약하게나마 회복세를 보이던 이란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원유 등 유류 관련 산업이 이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에 달한다. 중동 산유국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각각 46%)에 이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원유 의존도가 높아 올해 대규모 재정수지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란 정부는 올해 평균 유가를 배럴당 72달러로 보고 예산안을 짰지만 두바이유는 6년 만에 배럴당 5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더구나 IMF는 이란이 올해 재정수지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국제유가 수준을 배럴당 130.5달러라고 보고 있다.
나라살림에 비상이 걸리자 로하니 정권은 올해 혹독한 긴축예산안을 내놓았다. 국민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연료·음식보조금을 삭감하는 한편 부유층 세금도 올릴 방침이다. 또 종교단체나 군사 관련 기업에 대한 세금 공제혜택을 줄이겠다고 밝혀 보수세력과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특히 로하니 정권은 경제난 재발을 막기 위해 핵 협상 타결을 통한 외국인자금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번 기회에 비원유상품 수출을 확대하고 재정에서 50%에 달하는 석유 의존도를 33%로 대폭 낮추는 등 경제체질을 대폭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이란은 2013년 11월 '제네바합의'로 해외 동결자산 112억달러를 돌려받는 등 서방의 일부 경제제재 해제효과를 실감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가 하락 여파로 산업구조 다변화의 압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외국인자금이 경제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자금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란 정부는 올해 전체 예산에서 인프라 투자 비중을 기존의 31%에서 20%로 대폭 줄였다.
관건은 협상 시한인 6월까지 이란과 주요6개국(P5+1) 간 핵 협상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느냐다. 서방의 제재가 풀리지 않을 경우 한국 등 외국인자금 유치라는 로하니 정권의 목표도 무산될 수밖에 없다. 이란과 P5+1은 2012년 11월 이란의 핵물질과 시설 일부를 해체하는 대신 경제제재 일부를 풀기로 한 뒤 협상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이란에 허용할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수와 이란 경제제재 해제 속도를 놓고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자 당초 지난해 11월24일로 예정된 최종 타결 시한을 6월30일로 연장했다.
현재 개혁 성향의 로하니 정권은 국민투표까지 거론하면서 협상에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는 4일 "의회가 최고 입법의결기관이지만 국가 중대사와 국민의 생존권과 관련된 문제는 국민투표로 직접 국민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며 보수파가 장악한 의회를 압박했다. 핵 협상 타결을 위해서는 서방은 물론 이란도 한발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시사한 셈이다.
하지만 종교계·군부 등 보수파는 "핵활동을 양보할 경우 의회에서 승인하지 않겠다"며 강력 경고하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도 7일 "적들(서방)이 만약 우리의 존엄과 가치를 대가로 경제제재를 풀려 한다면 이를 절대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제제재 해제를 위한 핵 협상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핵주권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아울러 핵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이란의 주장처럼 전면적인 경제제재가 아닌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시한부 해제로 결론이 날 경우 로하니 정권의 외국인투자 유치전략도 한계를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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