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의 고공행진과 악천후 등으로 국제 식량 가격이 급등하면서 지구촌 중산층이나 서민들의 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경기둔화로 사치품 가격은 안정되는 반면 생활에 직결되는 식료품이나 에너지ㆍ교통비 등이 올라 서민층을 쥐어짜는 이른바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스크루플레이션이란 '쥐어짜다'라는 의미의 '스크루(screw)'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쥐어짤 만큼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 가운데 체감물가가 올라가는 상황을 나타낸다. 식료품이나 에너지 가격 등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품목의 가격 상승으로 중산층이나 서민층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고 가계가 점점 곤궁해지는 현상이다.
세계은행(WB)은 25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지난 1·4분기 국제 식량 가격이 지난해의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다고 밝혔다. WB가 발표한 '식량 가격 동향'에 따르면 고유가와 미주·유럽 지역의 악천후 등으로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 사이 세계 식량물가지수는 8% 상승했다. 이는 국제 식량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2월보다 6%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옥수수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 상승했고 콩기름 7%, 밀 6%, 설탕 5%, 원유는 13%나 올랐다. 이 때문에 각국의 식료품 가격도 상승했다. 동유럽의 벨라루스에서는 밀가루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92%나 폭등했다. 아프리카의 말라위와 에티오피아의 옥수수 가격은 각각 82%, 80% 뛰어올랐다. 멕시코 역시 옥수수 가격이 71%나 상승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도 앞서 이달 초 주요 곡물 수출국에서 발생한 기상악화 등의 영향으로 국제 식량 가격이 올 들어 석 달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콩ㆍ옥수수ㆍ설탕 등 55개 식품의 가격을 환산한 지수는 3월에 216.0포인트를 기록해 2월보다 0.3% 상승했다. 앞서 1월 식품가격지수도 지난해 12월 대비 2% 가까이 올라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상승세를 나타냈다.
WB의 가난퇴치ㆍ경제담당 부총재인 오타비아노 카누토는 "4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던 식량 가격이 지난해 12월 들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수천만명의 식량안보에 위협을 주고 있다"며 "당초 전망했던 2012~2013년 생산량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글로벌 식량 가격은 더 높은 수준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타격을 입는 것은 개도국뿐만이 아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넷판은 10년 이상 디플레이션을 겪은 일본에서도 전기요금이나 휘발유ㆍ식료품 등 생활필수품 가격이 올라 서민 가계를 압박하는 스크루플레이션이 엄습해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0.1% 상승에 그쳤지만 사치품목의 가격이 내림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생활필수품을 중심으로 가격이 상승세를 나타내는 품목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경기 회복세와 중동의 정세불안으로 국제유가가 불안한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식량 가격이 상승세를 지속할 경우 개도국은 물론 선진국에서도 서민 가계 불안은 증폭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크 디우프 FAO 사무총장은 "곡물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세계적으로 식량의 안정적 공급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며 "세계 식량 공급 안정화를 위해서는 정치적 의지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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