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퍼트와 박인비표 스윙, 그리고 포커페이스.' 박인비(25)를 세계랭킹 1위에 올려놓은 '퀸 메이커 3박자'다.
16일(한국시간) 한국 여자골프는 사상 두 번째 세계랭킹 1위를 배출했다. 주인공은 미국 무대에서 '조용한 암살자'로 유명한 박인비다. 이날 발표된 여자골프 세계랭킹에 따르면 박인비는 랭킹 포인트 9.28점으로 2위에서 1위로 올라섰다. 지난주 포인트에선 9.25로 1위 스테이시 루이스(미국ㆍ9.36)에 0.11점 뒤진 2위였던 박인비는 포인트를 0.03점 늘리면서 1위로 올라섰다. 4주 동안 1위를 지키던 루이스는 9.24점으로 떨어져 2위로 내려앉았다. 지난 2006년 여자골프 세계랭킹이 도입된 이래 한국 선수가 1위를 차지하기는 2010년 신지애(25ㆍ미래에셋) 이후 처음이다. 신지애는 그해 5월부터 총 26주간 1위에 있었다.
여자골프 세계랭킹은 최근 2년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와 유럽ㆍ일본ㆍ한국ㆍ호주 투어 등에서 거둔 성적을 점수로 환산해 이를 출전 대회 수로 나눈 평균 점수로 집계한다. 박인비는 이달 8일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 뒤 8일 만에 세계 1위에 오르는 겹경사를 맞았다. 당시 우승은 박인비의 개인 통산 두 번째 메이저 우승이자 시즌 2승이었다.
지난해 LPGA 투어 한 라운드 평균 퍼트 수가 28.34개로 가장 적었던 박인비는 올 시즌도 28.45개로 '퍼트 귀신'의 면모를 이어가고 있다. 그린의 색, 잔디의 결을 보고 거리감을 조절하는 노하우가 몸에 밴 덕이다. 그린 색이 옅으면 스피드가 빠른 편이고 잔디 결이 홀 방향으로 누웠으면 볼이 빠르게 구른다고 판단하는 식이다. 정석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리듬이 정립된 스윙도 세계 1위 등극의 주요 공신이다. 박인비는 임팩트도 되기 전 고개가 이미 타깃 쪽으로 돌아간다. '볼을 끝까지 봐야 한다'는 아마추어 공식과 정반대지만 일관된 방향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변칙 기술이다. 여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표정은 동반 라운드하는 추격자들을 애타게 만드는 '최종 병기'다. 멘털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용한 암살자라는 애칭이 잘 어울리는 박인비의 표정은 지난해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넘어오면서 더욱 여유로워졌다.
LPGA 롯데 챔피언십 출전을 위해 하와이에 머물다 1위 등극 소식을 접한 박인비는 "오늘(16일)이 골프 인생에서 가장 경사스러운 날이다. 하와이에 함께 온 가족들과 기쁨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면서도 "다른 많은 선수들과의 격차가 크지 않다. 매주 신중을 기해야 할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며 자세를 낮췄다. 박인비는 지난주 우승 뒤 18번홀 연못의 물을 담아갈 정도로 우승 등의 감격적인 순간을 가족과 함께하기를 바라왔다.
박인비의 세계 1위 등극은 조용하지만 이미 지난해부터 예상돼왔다. 그는 지난해 LPGA 투어 2승과 여섯 차례의 준우승으로 상금퀸(24억7,000만원)과 최저 타수상(70.21타)을 휩쓴 뒤 "내년(2013년)엔 아깝게 놓친 올해의 선수상과 세계 1위를 이루고 싶다"고 했었다. 시즌 초반 일찌감치 세계 1위 자리에 앉은 박인비는 올해의 선수상 부문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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