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이젠 시장경제가 민주주의에 답할 때
서종대 주택금융공사 사장
효율과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경제와 형평과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가 아무런 보완장치 없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발전해가기는 쉽지 않다. 시장경제는 경쟁우위기업의 누적적 경제력 집중에 의한 독과점의 탐욕을 막기 어렵고 민주주의는 개인적인 노력이나 생산성에 비례하지 않는 형평과 평등배분의 주장을 막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랜 군사독재에서 벗어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문민시대에 들어선 지난 1990년대 초부터 민주주의의 강화가 보호에 길들여진 시장경제의 약화를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 있었고 민주화 세력은 적정한 보완장치만 만들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를 설파해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민주주의는 절대왕정기에 시장경제세력이 요구해 만들어진 신국가 질서라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시발을 13세기 영국의 대헌장에서 찾고 있지만 실제 광범위한 시민민주주의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신흥 부호세력으로 등장한 서구의 소상공인들(프티브루주아지)이 국왕의 자의적인 출입국규제와 과세권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사유재산권을 보장받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영국과 프랑스의 시민의회는 국왕의 자의적인 과세권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였고 이 의회를 합법화하고 평등한 선거권을 쟁취하는 과정이 시민혁명의 전과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시민혁명 이후 서구의 시장경제는 꽃을 피웠지만 탐욕적인 상공인들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에 의한 독과점의 폐해와 착취당하는 하층민의 노예적인 삶으로 인한 불만이 분출해 마침내 민주주의는 시장경제에 강력한 해답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공정경쟁ㆍ분배정의ㆍ사회복지라는 지속 가능한 대안들을 받아들인 시장은 건전한 발전을 이뤄왔지만 이를 거부한 시장은 공산주의라는 극단적인 이상론으로 흘렀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본격적인 시장경제를 시작한지 50여년 만에 선진국 수준의 괄목할 성장을 이뤄낸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의 경제력집중과 독과점 폐해, 양극화로 인해 시장경제에 대해 적정한 해답을 요구하는 민주주의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기득권층이 경제위기상황을 강조하며 자기들의 이익 지키기에만 골몰한다면 어려움에 봉착할 게 분명하다.
대기업은 분기마다 수조원의 이익을 내고 국가는 외교무대에서 혁혁한 성과를 낸다고 자랑하는 뉴스들이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는커녕 화만 나게 하고 있는 게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이러한 화가 부정적인 에너지로 쌓여 폭발하기 전에 이제는 시장경제가 민주주의에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해법을 하루빨리 내놓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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