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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클릭] 노타이 시대


1960년 독일 퀼른의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아틀리에. 피아노 공연을 하던 백남준이 갑자기 연주를 멈추고 객석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연주를 감상하던 관객의 넥타이를 싹둑 잘라버리고 사라졌다. 연주회는 그것으로 끝났다. 넥타이로 상징되는 현 시대의 힘과 권위를 차버리고 싶었던 백남준에게는 이 공연 이후 '음악의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굳이 예술가를 빌려 얘기할 필요 없이 우리 사회에서 넥타이는 오랫동안 획일성의 족쇄로 존재해왔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같은 일부 권력자야 노타이 차림으로 일할 수 있었지만, 평범한 직장인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에 목을 꼭 여미고 있어야 했다. 최근 쿨 비즈가 강조되며 '한 여름엔 노타이'가 대세를 이뤘어도 아직 공식 석상에서 넥타이를 들고 어정쩡하게 남의 눈치를 살피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넥타이가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7세기 30년 전쟁 당시 프랑스 왕실 보호를 위해 용병으로 갔던 크로아티아 기마병들이 목에 감았던 천이 기원. 고향으로 무사귀환을 바라는 여인들의 염원이 담긴 가느다란 스카프는 얼마 안지나 루이 14세에 의해 남성 패션아이템으로 탈바꿈했다. 지금과 같이 긴 모양을 가진 '포인핸드'역시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의 마부들에게서 비롯돼 귀족과 부유층으로 확산되면서 사교모임에서 빠져서는 안될 필수품목으로 변질됐다. 사랑과 서민의 표식에서 시작된 넥타이가 시간이 지나며 남성들을 구속하는 상징물이 됐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이젠 시대가 바뀌고 있다. 국내 3대 백화점의 올 넥타이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많게는 16%까지 줄었다. 신사복 정장 판매까지 눈에 띄게 감소했다 하니 '정장에 넥타이'라는 남성패션 공식은 이젠 옛 얘기일 뿐이다. 하긴 1년 내내 툭하면 원자력 발전소 가동 중단이고 블랙아웃 위험이니 늦더위에 살아남으려면 넥타이라도 풀러야 하지 않겠는가. 길을 오가는 노타이부대의 모습은 패션을 위한 선택일까, 아니면 전력난이나 구매력 감소로 인해 강요된 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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