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A씨는 얼마전 뜻하지않게 수표절도 혐의로 기소되는 봉변을 당했다. A씨가 지난 여름방학때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받아 사용한 수표가 도난 수표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A씨는 한번 수임료 400여만원에 달하는 변호사를 선임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홀어머니는 힘들게 식당일을 하며 가게를 꾸려나가고 있고, 자신 또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할 정도로 집안형편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A씨는 결국 수임료가 비싼 사선 변호사 선임을 포기하고, 국선변호인을 법원에 신청했다. 최근 경기침체의 그늘이 깊어지면서 A씨처럼 법정에 서야 하는 서민들이 국선 변호인을 선임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경기침체 여파로 국선변호사 선임 급증=8일 대법원에 따르면 올 1월부터 7월까지 1심 사건에서 국선변호인을 신청한 건수는 3만6,72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만1,517건)보다 16.5%나 증가했다. 이는 2006년 같은 기간(2만1,838건)과 비교하면 무려 68%나 급증한 것이다. 이처럼 국선변호사 수요가 몰리고 있는 것은 2006년 8월부터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는 피고인에게도 국선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뀐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선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없는 서민층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국선 변호인 신청 사유로 ‘빈곤’을 제시한 사례는 2006년 3만2,585건에서 2007년 4만8,815건으로 증가했고, 올 7월말 현재 3만2,354건을 기록하는 등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최근 들어 형사사건의 경우 국선변호인을 신청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며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사선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할 형편”이라고 전했다. 형사사건 전문의 B변호사는 “비싼 변호사 수임료는 가뜩이나 체감경기가 나쁜 서민층이나 빈곤층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최근의 경제사정과 맞물려 국선변호인 신청건수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국선변호인 태부족… 부실변론 우려도= 국선변호인 신청 건수가 급증하면서 부실변론 등의 부작용도 생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국선 변호만 전담으로 하는 ‘국선 전담 변호사’들은 한달에 25건으로 사건 제한을 두고 있지만, 현실은 한 사람이 40~50건의 사건을 맡고 있는 게 태반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법의 국선변호인으로 활동하는 한 변호사는 “동료 변호사의 경우 이달 들어 줄인다고 했는데도 30여건을 맡았다고 하더라”며 “국선 변호사의 업무과중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등이 국선 변호사의 처우개선 등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과중한 업무 부담으로 국선 변호사를 구하기 어려운 것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전국 10개 지방법원에서 실시한 국선전담변호사 추가 모집에서 대규모 미달사태를 빚은 것은 열악한 국선 변호사의 현실을 반증하고 있다. 대법원에 등록된 국선변호사는 80여명에 불과해 밀려드는 국선변호인 신청을 제때 처리하려면 태부족인 상황이다. 이에 따라 국선 변호사 1인당 사건 수의 제한이나 재정지원 확대 등과 같은 국선 변호의 질적인 보장을 위한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선변호인이란? 미성년자나 70세 이상의 노인, 심신장애자,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피의자 등이 변호인이 없는 경우 피고인의 청구가 있으면 법원이 직권으로 선임해 주는 변호인를 말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