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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분쟁 중기죽인다] 3. 신속하고 엄격하게
입력1999-05-06 00:00:00
수정
1999.05.06 00:00:00
정맹호 기자
개발비가 많이 들어가고 품질이 우수한 제품일수록 모방품은 많아진다. 부족한 자금을 그나마 제품개발을 위해 다 써버린 중소기업에게 모방제품의 출현은 치명적이다.『힘들게 개발한 제품을 모방, 우리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업체가 있어 고소하겠다고 말했더니 법대로 하라면서 눈도 껌벅 안했습니다』
한 중소기업인 A씨의 하소연이다. 이렇게 큰소리치는 이유는 당장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허를 출원해 등록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2년 정도. 중소기업은 제품판매와 함께 특허출원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불행히도 출원을 했더라도 등록증을 받기 전까지는 법적보호를 받을 수 없다. 남의 것을 도용하겠다고 맘을 먹는다면 적어도 2년은 장사를 할 수 있는 셈이다.
제품수명이 하루가 다르게 짧아져가고 있는 현실에서 갓 제품을 시판한 중소기업이 가격에 밀려 제품판매를 못한다면 손해는 치명적이다.
특허등록된 후 모방제품을 생산한 사람에게서 그 동안의 피해를 소급해 배상받을 수는 있다. 민사상의 손해배상은 물론 형사고발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그동안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에게 그러한 여력마저 남아있지 못하다.
더우기 모방을 한 회사가 시간을 벌 요량으로 등록된 특허에 대해 이의제기라도 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에 대한 심사결과를 또다시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불려다니고 변리사나 변호사 등에게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어 대개의 경우 포기하고 만다.
『무엇보다 신속한 처리가 중요합니다. 이와 함께 회사관계자의 특허침해 등에 대해서는 가중처벌하는 등 법규정을 강화하는 것도 시급합니다』 이 문제로 수개월간 동분서주하면서 특허에 관한한 전문가가 됐다는 A씨의 결론이다.
이런 폐해때문에 처리기간에 대한 민원이 쏟아지자 특허청도 나름대로 기간단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법원에 계류중인 사건 등 긴급한 사안에 대해 심판청구순서에 따르지 않고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 「우선심판제도」를 개선키로 한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쏟아지는 출원건수에 비해 심사인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우선심판제를 개선, 3개월내에 처리토록 한것도 일반심사기간이 길다는 자기고백에 다름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특허청이 처리한 물량은 14만4,000여건. 97년의 6만5,000여건보다 240% 늘어났다. 이는 심사인력을 대폭 충원한 결과다. 특허청에서 심사를 담당하는 인력은 모두 500여명. 지난해 이들이 1인당 처리한 건수는 370여건에 달했다. 한사람의 처리물량이 하루 한건을 넘어섰다.
심사관 한사람당 담당하는 기술분야도 171개에 달했다. 이것도 전년도의 206개보다는 상당히 줄어든 것이지만 첨단기술분야 등 난해한 분야의 특허출원이 많아지는것을 감안하면 아직까지 전문성을 의심하는 출원자가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당연히 이의신청도 늘어나고 있다. 이의신청이란 기존 등록된 특허가 특허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며 이의를 제기하는 것.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면 특허등록은 취소되고 이전의 결정은 번복된다. 지난해의 이의성립률은 32%에 달했다. 전년도 38%보다는 낮아졌지만 아직까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국내 특허관련 법률은 침해에 대해 특허권자가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을 담고 있다. 법원에 민사적으로 「침해금지청구」와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고 형사적으로는 「침해죄」로 상대방을 고소할 수 있다. 침해금지청구권이 현실적으로 행해지는 「침해금지가처분신청」도 있다.
미국·독일 등 특허 선진국이 가처분신청에 대해 우선적으로 특허에 대한 유효성을 인정해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임으로써 특허권자의 권리가 신속하게 보호되고 있다. 특허의 유효성 판단도 특별법원의 전문성 있는 법관들이 맡도록 해 소송절차적으로도 신속하고 신뢰성을 기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법은 가처분신청을 내더라도 소송절차를 중지하거나 특허기술에 관한한 비전문가라 할 수 있는 일반법관이 판단을 하기 때문에 긴급한 사안이면서도 특허권자의 권리가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법원의 가처분신청 용인도 소극적일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률전문가는 아니지만 A씨의 주장은 귀기울여 볼만하다. 『심결을 빨리 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법원이 특허침해 제품의 제작금지가처분을 신속하게 내려야 하고 이 문제만을 전담하는 공신력 있는 기관도 만들어야 한다.』
카피의 70~80%가 전직 임직원이나 협력업체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점을 감안해 유관업자의 침해에 대해서는 「가중처벌」할 수 있는 근거도 신설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특허침해는 결국 침해하는자나 침해받는자 모두가 공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가 도달한 마지막 결론이다.
/정맹호 기자 MHJEONG@ 박형준 기자 HJ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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