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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대전/선진국 금융기관] 독일 코메르츠은행
입력1999-08-05 00:00:00
수정
1999.08.05 00:00:00
신경립 기자
독일 코메르츠방크 데니스 필립스 대변인이 전한 마틴 콜하우젠 행장의 말이다. 전세계를 강타하는 초대형 합병은 그 규모만큼이나 큰 문제를 떠안고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유럽 은행들은 경쟁을 위해 일정한 「규모」가 필요하다는데는 공감하지만, 모두가 초대형 은행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감독 당국도 거대 은행간의 초대형 합병을 달가와하지 않는다. 너무 커서 쓰러질 수도 없는 「공룡은행」은 정부 입장에서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필립스 대변인은 『코메르츠는 초대형 합병보다는 함께 일을 하고 함께 커 갈 수 있는 파트너를 원한다』고 말했다. 합병에 따른 골치아픈 문제들을 떠안기 보다는 상호 전략적 제휴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는 편이 이득이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유럽 밖의 금융거래는 현지 파트너를 통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게 코메르츠의 전략이다. 서로 낯선 문화에서 나고 자란 금융기관간의 통합이 정(正)의 효과보다는 서로 이물질처럼 섞이지 못하는데 따른 역(逆)효과만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힘들여 섞이려고 애쓰기 보다는 독립된 기관끼리 서로의 필요만 충족시켜주자는 것이다.
외환은행에 대한 지분 참여가 좋은 예다. 코메르츠는 외환은행을 인수하기보다는 일정 지분을 지닌 대주주로서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코메르츠가 필요한 것은 국내에 뿌리내리면서 현지의 고객들과 코메르츠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국내 은행」이지, 해외에 인수돼 국내에서 이방인 취급 당하기 쉬운 「외국 은행」은 아니다.
최근 코메르츠가 프랑스계 크레디리요네 은행에 지분참여를 하기로 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코메르츠는 이밖에도 오스트리아나 이탈리아, 스페인 등 각지 금융기관과의 제휴를 통해 차근차근 동지를 늘려나가고 있다.
일부 금융 전문가들도 코메르츠의 이같은 입장을 뒷받침한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앞으로 합병 행진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동시에, 직접 합병보다는 상호 출자나 주식교환 방식에 의해 업무 협조를 강화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큰 것이 아름다울(BIG IS BEAUTIFUL)」 수는 있지만, 커야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쿠츠(COUTTS)은행. 명백한 타깃층만을 공략하는 전문화 전략을 통해 「작지만 강한」 은행으로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쿠츠은행이 노리는 대상은 부유한 소수의 특권층이다. 은행에 큰 수익을 안겨주는 소수에 대해서만 확실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알짜」 은행으로 인식되고 있다. 명문가 출신의 영국 엘리트들을 양산하는 이튼 스쿨도 쿠츠은행의 대표적인 타깃. 장래의 부와 명예가 보장된 학생들이야말로 미래의 우량 고객들이라는 것이다.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독일의 소형은행인 이익조합은행들의 영업 형태에서도 들여다볼 수 있다. 이들 은행은 대형 시중은행의 틈바구니에서 주로 예금이나 대출 등 은행 고유의 업무에 치중하면서 생존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들은 평균 거래규모가 보통 1,000만~5,000만마르크, 평균 자산규모가 4억5,000여만마르크 정도로, 마찬가지로 지역형 소형저축은행인 스파르카센(SPARKASSEN)의 자산 규모가 15만마르크 수준임을 감안할 때 규모의 열세는 두드러진다.
이익조합은행은 과거 지역의 사업가나 농부들이 조합 형태로 설립한 금융기관으로, 독일 내에서 현재 약 2,000개가 영업중이다. 이중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4개 기관은 「중앙 은행」이라고 불리며 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나 주식상품 제공 등 예·대 이외의 업무까지 다루고 있다.
규모면에서 절대적인 열위에 놓인 이들 소형은행의 생존전략은 철저한 「고객 밀착」과 「협력 체제」에 있다. 2,000여개 이익조합은행들은 총 1만6,000개에 달하는 소형 점포를 통해 독일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인근 지역 고객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 나름대로의 살 길을 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그리 많지 않은 기업 고객도 지역내 영업에 의존하는 소규모 업체를 대상으로 한다. 고객 밀착형 영업을 펴기 때문에 각 지역 고객의 특성에 따라 기관의 특색도 달라진다. 무수한 이익조합은행들이 무작위로 합병해 덩치를 키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대신 이들은 일상 업무에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긴밀한 협조 체제를 유지한다. 각 기관이 따로따로 비슷한 상품을 개발하는데 따른 낭비를 없애기 위해 공동상품을 개발·판매하고 있으며, 전산부문에 대한 공동투자에 나서 부담을 쪼개고 있다.
폰 뱅킹이나 인터넷 뱅킹 등 특히 많은 비용부담을 요구하는 전산부문도 회원 은행들이 사용도나 규모에 따라 비용을 분담하는 것을 전제로 공용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한다. 물론 경영상 필요한 기본 데이타도 공동으로 관리하게 된다. 이처럼 전산부문을 개발해 각 회원은행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이들의 협회격인 BVR(BUNDESVERBAND DER DEUTSCHEN VOLKSBANKEN UND RAIFFEISENBANKEN)의 몫이다.
그렇다고 모든 회원 은행이 하나의 조직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각 회원들에게는 모든 정책 결정에 있어서 독자적인 결정권이 주어진다. BVR이나 「중앙 은행」들이 공통된 정책이나 전략을 세워 제시할 수는 있지만 최종 결정은 각 기관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상품을 공동 개발하긴 하지만, 팔고 안팔고는 각자가 결정할 일이며, 독자적으로 콜 센터나 인터넷 뱅킹 시스템을 개발·운용하는 기관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들이 언제까지 지금과 같은 조직을 유지할 지는 미지수다. 합병을 통해 거대한 영업망과 투자력을 갖추게 된 대형 시중은행들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지역에 뿌리를 둔 소형 은행이나 특수목적은행들도 심각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이익조합은행의 경우 지난 30년간 1만2,000개에서 2,000개로 숫자가 줄었다. 「중앙 은행」에 속한 인수·합병(M&A) 팀의 검토를 거쳐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엔 합병이 추진되기도 한다는 것. 고객들의 수요가 다양해지고 금융기관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추세는 한층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BVR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과정이 앞으로도 지속되면서 10년 후에는 회원 수가 800개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BVR의 정책 담당 스테판 게르하르트 박사는 『금융기관을 운영하는데 드는 고정비용을 감당하기엔 현재 규모가 너무 작다』며 『고객을 유지하면서 비용을 줄일 수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들 소형 은행들은 해당 지역의 경제사정이나 고객의 재정 상태는 손바닥 보듯이 잘 알고 있는 반면, 시장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게르하르트 박사는 『은행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범위에서 통합 추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크다고 강한 은행은 아니다』라는 주장을 거듭하는 코메르츠방크도 모락모락 피어나는 합병설로부터 자유로롭지는 않다. 가뜩이나 독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도이체방크가 미국의 뱅커스트러스트를 인수해 독일과 유럽은 물론 세계 금융시장의 절대 강자로 떠오르자, 프랑크푸르트 금융가의 호사가들은 코메르츠방크가 세력 균형을 위해서 독일내 2위 은행인 드레스너방크와 손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수근거리고 있다.
추리히 런던 프랑크푸르트=신경립기자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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