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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올림픽의 감동과 증오

당당한 패배, 국격 높일 기회 삼아야<br>오해·억측은 고립 자초, 국익 저해<br>억울해도 패자의 아량은 금메달감<br>화합과 승복, 대선레이스로 이어지길


스포츠는 감동이다. 대중의 관심이 쏠린 경기는 더욱 그렇다. 감동을 넘어 환희까지 안겨준다. 김재범 선수가 런던 올림픽 유도 81㎏급 결승에서 승리한 1일 새벽, 아파트촌에 울린 갑작스러운 환성 소리는 열대야와 선잠을 동시에 날려버렸다. 장하다. 금메달보다도 그가 쏟았던 땀에 박수를 보낸다.

스포츠가 선사하는 감격은 상반된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화합이다. 올림픽은 애초부터 평화와 화합의 정신에서 태어났다. 크고 작은 도시국가로 갈라져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에서 올림픽이 치러지는 동안에는 싸움이 멈췄다. 전쟁을 일으킨 국가에는 집단적 응징이 가해졌다. 문화사학자 아르놀트 하우저에 따르면 대부분이 전사(戰士)였던 그리스의 청년들은 올림픽에서 피아간 승패를 가리면서도 화합을 다졌다.

평화와 대비되는 스포츠의 숨은 얼굴은 증오다. 국민적 광기까지 낳는다. 승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전쟁으로 번진 경우도 있다. 지난 1969년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맞붙은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편파 판정 시비와 관중의 경기 방해 소동 끝에 감정의 골이 깊어져 전면전을 치렀다. 1만5,000여명이 죽거나 다치고 15만명이 집을 잃은 닷새간 전쟁의 시발점은 스포츠였다.

정당한 승부가 아니라는 생각, 억울하다는 감정은 남의 나라 옛날 얘기가 아니다. 당장 런던 올림픽을 보자. 심판의 어이없는 오심ㆍ횡포, 미숙한 경기 운영으로 우리는 최소한 몇 경기를 놓쳐버렸다. 화난다. 오직 올림픽을 향해 오랜 시간 동안 갈고 닦아온 선수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멈춰버린 1초에 결승행이 좌절된 여자 펜싱의 신아람 선수, 주심의 판정 번복으로 승패가 뒤바뀐 남자 유도의 조준호 선수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화가 날수록 우리가 할 일이 있다. 올림픽 정신을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부당함을 참기도 쉽지 않다. 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은 '불법을 하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불법을 참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지 않는가. 그럼에도 올림픽 정신을 강조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국익(國益) 때문이다.



'런던 올림픽 오심'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자칫 국제적 망신살을 자초할 뻔했던 사례가 있다. 남자 수영의 기대주인 박태환 선수가 실격당했을 때 일부 언론 보도와 네티즌의 반응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중국 심판이 박태환의 라이벌인 중국 쑨양 선수를 위한 악의적 오심을 내렸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정작 오심의 장본인은 캐나다 심판이었다. 사실이 밝혀진 뒤 누구도 반성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에게 미안하다. 흥분은 국익은 물론 국격(國格)까지 떨어뜨린다.

'신아람의 눈물'도 입장을 바꿔 생각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인 독일 선수가 우리 편이었다면 십중팔구 '절체절명의 순간, 1초를 남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불굴의 투혼이 승리했다'며 축하 분위기에 휩싸였을 것이다. 국제펜싱연맹이 신아람에게 특별상을 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오심 덮기 꼼수'라고 평가하는 시각은 옹졸하다. 유독 우리에게 하루에 한 건 꼴로 집중되는 오심이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하는 한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 역시 소아병적이다. 국익에도 해롭다.

정치의 계절이 곧 찾아온다. 우리 선수단에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면서도 화합과 승복의 미학을 생각하는 한국인이라면 대선 레이스도 갈등의 증폭제가 아니라 국민 화합으로 이어지는 축제로 만들 수 있으리라. 올림픽의 감동만 얻고 증오는 지워버렸으면 좋겠다.

패배와 불만에도 등급이 있다. 적어도 스포츠 세계에서 억울한 패자의 승복과 아량은 아름답다. 심판위원장의 유례없는 판정 번복으로 승리를 날렸으나 당당하게 받아들인 조준호 선수의 인격과 매너야말로 진짜 금메달 감이다. 남자 수영 400m에서 금메달을 딴 쑨양 선수가 자신을 롤 모델로 삼았다는 소식에 '영광'이라고 말한 박태환 선수도 어른스럽다. 억울한 패배를 증오로 흘려보낼지 기회로 삼을지 답은 자명하다. 쑨양에게도, 신아람을 제친 독일의 여검사에게도 진심이 담긴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자. 올림픽 정신을 위해서도, 우리의 자존심과 미래를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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