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현대오일뱅크와 S-OIL이 "담합에 따른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을 취소하라"며 공정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앞서 현대오일뱅크와 S-OIL은 서울고등법원에서도 승소 판결을 받았으며 이번 대법원 판결로 승소가 사실상 확정됐다.
공정위는 2011년 9월 현대오일뱅크와 S-OIL·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등 이른바 4대 정유사가 '주유소 원적지 담합을 저질러 시장질서를 해쳤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총 4,300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원적지 담합이란 어떤 주유소가 A라는 정유사와 거래하다가 B정유사로 거래사를 바꿀 경우 원래 거래하던 A정유사(원적 정유사)의 동의를 받기로 한 것을 말한다. 이 같은 사실은 담합에 참여했다는 GS칼텍스의 한 직원이 자진신고하면서 밝혀지게 됐다. 이 직원은 "과도한 주유소 유치 경쟁으로 불필요한 출혈을 막기 위해 2000년 각 정유사 실무자들이 담합하기로 하고 이를 2011년까지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자진신고한 GS 직원의 진술이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 이유로 △당시 이 직원은 회사의 영업방침을 결정할 권한이 없었으며 담합 결정을 상급자에 보고하지도 않은 점 △재판 과정에서 합의 대상 등에 대한 진술이 계속 오락가락하는 점 △같이 합의했다는 다른 정유사 관계자들은 담합 논의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점 등을 들었다.
재판부는 또 "담합이 있었다면 그 이후 각 정유사의 주유소 유치와 이탈 실적이 비슷하게 나타나야 하는데 2002~2010년 실적을 보면 그런 정황도 없었다"며 "2000년 이후 주유소 유치 경쟁이 줄어든 것은 과거 과도한 유치 경쟁이 큰 손실을 불러온 경험 이후 자연스레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S-OIL에 대해서는 "생산능력에 비해 주유소가 부족한 S-OIL은 주유소 확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담합에 가담할 유인이 낮다"며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로 취소되는 과징금 규모는 현대오일뱅크 753억6,800만원, S-OIL 438억7,100만원에 이른다. 1,337억원의 과징금을 내고 같은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도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4대 정유사 담합 자체가 없었다"는 사실이 확정된 만큼 조만간 과징금이 취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SK는 서울고법에서 승소하고 현재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GS는 자진신고로 과징금을 면제 받았다.
대법원이 정유사 담합이 없었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공정위는 무리한 조사를 벌였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공정위는 당시 이명박 정부가 적극 추진하던 석유가격 인하 기조에 발맞춰 성급한 조사를 벌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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