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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피디의 Cinessay]'상해임시정부와 김구선생'

지금의 한국 있게한 이름 모를 애국영웅


나는 사람들이 많이 죽는 전쟁영화가 싫다. 주인공은 전쟁중에도 카리스마 뽐내며 끝까지 총알도 대포도 피해가지만 행인1, 2로도 표시되지 못할 군인이나 일반인들은 떼로 죽어나간다. 너무 한꺼번에 많이, 아무렇지도 않게 죽어서 과연 그들에게 '삶'이라는게 존재했을까 싶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 누군가에겐 목숨과 같이 소중한 아들이요, 남편이고 아버지였을거다. 전쟁이 난다면, 나와 가족 역시 그렇게 힘없는 군중 속의 한 명이 될거라고 상상만해도 절망스럽다.

그래서 전쟁을 비롯한 폭력 영화가 싫다. 그런 영화를 어쩌다 봐도 주인공보다는 이름없는 다수의 주변인들에게 마음이 간다. 이런 느낌을 처음으로 갖게 된 영화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본 '상해임시정부와 김구선생'(1969년작)이다. 이 영화에는 김구, 윤봉길, 이창호, 나석주 등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순국선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나는 김구 선생의 어머니, 아내, 술집 여자들과 김구 선생을 존경하고 따르는 이름없는 사람들이 더 깊이 와닿았었다. 영웅은 거창한 이상 속에서 많은 것을 고뇌하고 준비하고 실행하지만, 그들을 뒤에서 보살피고 따르는 이름없는 사람들의 희생은 보다 순수하다. 그들은 존경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한다.

조국, 독립..이런 큰 그림은 못보지만 동물적 본능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준다.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이 영화에서 김구 선생이 한선생(신성일 분)에게 독립자금 운반을 지시하며 "중국 곳곳에 사는 우리 동포들이 십시일반 모아 준 돈"이라고 표현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 '동포'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지난 2007년 '남북청소년 역사탐험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100년전 애니깽 농장이 있던 멕시코 메리다로 취재를 갔다. 그곳에서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비참한 삶과 마주했다. 나라가 없는 그들의 삶은 노예와 다름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먼곳에서, 노예같은 삶 속에서도 십시일반 독립자금을 모아 조국으로 송금했다는 사실이었다. 조국으로부터 혜택이라고는 단 한번도 누리지 못했을 그분들이 채찍을 맞아가며 번 그 피같은 돈을 언제일지도 모를, 누가 어떻게 쓸지도 모를 독립자금을 보냈다는 역사적 사실 앞에 나는 소름끼치는 감동을 받았다.



며칠 후면 현충일이다. '애국'이라는 단어를 잘못 쓰면 촌스럽거나 정치적 꼼수가 있는지 의심받기도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나라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것을. 화려한 상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골목길의 임시정부 청사와 가축장 같던 메리다의 애니깽 농장에서 만난 이름모를 수많은 애국영웅들에게 지금은 옷깃을 여며도 될 때이다.

조휴정 KBS PD (KBS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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