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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사이드] 검증 안된 치료방법 난무… 되레 부작용만 키울수도

■ 몸집만 커지는 아동치료 시장<br>바우처 사업, 비장애 아동 확대 후 치료사 확보 위해 민간 자격 인정 발급 기준 천차만별… 질적 저하로<br>장애 의심 아동 조기개입 시기 놓쳐 평생 도움 손길 받는 신세 될 수도


아이들은 아프다.

따돌림, 학교ㆍ가정에서의 폭력, 입시경쟁, 부모의 다툼과 이혼, 폭력적인 게임과 TV, 인터넷, 각종 범죄….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별다른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사실 더 많다. 일례로 주의력결핍장애(ADHD), 틱증상 등의 질환은 현재까지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엇나가는 혹은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보는 부모는 애가 닳는다. 뭐라도 해야겠는데, 무얼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심리 상담을 비롯해 좋다는 놀이치료나 미술치료 등을 시도해보고 싶지만 무턱대고 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만만찮다.

정부가 지난 2007년 무렵부터 시작한 '치료서비스 바우처 사업'은 이런 부모들에게 한 줄기 희망으로 다가왔다. 일정 소득 이하의 가구가 복지관이나 민간기관에서 언어ㆍ청능ㆍ미술ㆍ음악ㆍ행동ㆍ놀이심리운동 등 6개 치료서비스를 받을 때 일정액을 보조해 주는 식으로 운영된다.

처음에는 자폐나 지적장애 아동들의 재활 치료를 돕겠다는 목적으로 시작돼 대상이 한정됐지만 2008년부터는 행동이나 정서에 문제가 있는 비장애 아동들을 위한 사업도 시작했다.

정부의 바우처 사업 덕에 부모들은 한 달에 드는 비용을 15~25만원에서 최고 3~6만원 수준으로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여유 있는 가정의 전유물로 생각했던 민간 기관의 심리상담 서비스나 미술ㆍ음악 등 예술 치료를 큰 부담 없이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서비스 제공 기관이 1년에 200~300곳씩 생기고 있으며, 연간 이용자 수는 5만7,000여명에 이른다.

그와 함께 문제도 자라나고 있다. 치료사 자격 기준을 엄격하게 두지 않아 검증되지 않은 민간자격과 전문가들이 난립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 목적이 '아동치료'인지 '일자리 창출'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아동치료(테라피)를 유지하는 큰 축은 정부가 주도하는 2개의 바우처 사업(장애아동 재활치료, 문제행동 아동 조기개입 서비스)이다.

두 사업의 1년 예산은 올해 기준으로 재활치료 480억원, 문제행동 151억원 규모다. 매년 600~700억원이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니,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지난 6월 기준 재활치료는 전국 1,250곳에서, 문제행동은 892곳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10년과 비교해 1년 6개월 만에 각각 56%(449곳), 68%(364곳)씩 증가했다.

시장이 확대된 만큼 치료사들도 빨리 배출할 필요가 생겼다. 정부는 민간 자격을 대거 인정해주는 방법을 택했다.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는 복안이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언어ㆍ청능ㆍ미술ㆍ음악ㆍ행동ㆍ놀이심리운동 6개의 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민간자격증 수는 2008년 8개에서 올해 9월 113개로 14배가 늘어났다. 특히 미술치료의 경우 관련 자격증이 무려 47개에 이른다.

문제는 자격증 발급 기준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한국미술치료학회에서 발급하는 미술치료사 자격증을 따려면 미술치료이론과 실제 40시간 등 총 220시간의 연수를 받은 후 수련기관에서 감독의 지도하에 총 1,000여 시간의 수련시간을 거쳐야 한다. 반면 A개발원에서 발급하는 미술심리상담사 자격의 경우 온라인강의 8시간 수강을 한 후 온라인을 통한 필기시험에 합격해도 자격증이 나간다.

1,000시간이든 8시간이든 대우에는 큰 차이가 없으니 치료사들도 힘들여 돌아가는 길을 택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당연히 실력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만 부모들은 이런 자격 여부를 구분할 수가 없다.

치료사들은 민간자격증 양산이 전반적인 질적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어린이집에서 미술치료사로 근무하는 전 모씨는 "1,000시간씩 임상실습으로 해도 막상 현장에서 아이들을 다루는 건 쉽지 않다"며 "지방 복지관 같은 곳이 인력난을 겪으며 '일하면서 경험 쌓자'는 식으로 비전문가를 고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치료의 관점에서는 이렇게 접근해서 안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검증 받지 않은 각종 치료들이 난무하는 것도 문제다.

김선현 CHA의과학대학교 임상미술치료학 교수는 "임상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온갖 방법들이 치료라는 이름을 달고 부모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며 "효과가 있다고 확인된 치료법에만 용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선을 그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재활치료를 제공하는 기관이 고용하는 인력의 경력 등을 공개하는 식으로 질적 성장을 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부모들이 직접 실력 있는 선생님을 고르도록 도와 전문성이 떨어지는 치료사들은 불이익을 보도록 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장애인부모연대의 김치훈 정책실장은 "치료사에 국가자격증을 도입하고 국가가 질 관리를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언어재활사만 공인 자격으로 관리가 되고 나머지는 또 기약이 없다"면서 "경력을 공개해 부모들이 고를 수 있도록 한다 해도 그건 서울 같은 대도시의 이야기다. 제공기관이 몇 개 없는 지역의 경우는 여전히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토로했다.

비전문가에 의한 치료라고 해서 별다른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위안 삼을 일도 아니다. 자칫 중요한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폐 및 발달장애가 명백히 의심되는 경우라고 해도 적절한 조기개입이 이뤄진다면 향후 사회성 부족이나 문제행동이 크게 완화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효과적인 조기개입이 이뤄지지 않은 자폐성 장애아동의 90%는 일생 동안 특별한 돌봄을 필요로 하게 된다.

곽영숙 제주대 의과대학 소아정신과 교수는"치료를 기대하고 아이를 맡겼는데, 비전문가가 1~2년에 걸쳐 계속 놀아주기만 한다면 시간 낭비를 넘어 심각한 문제"라며 "장애가 의심되는 아동의 경우 적절한 진단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현재로서는 부모가 좀더 세심하게 신경 쓰는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가급적 병원과 연계된 치료센터 및 치료사를 택하고 임상적으로 효과가 검증된 프로그램인지 확인하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 바우처 사업 서비스는…
놀이? 치료? 교육?
정부 명확한 선 그어야


놀이치료는 '놀이'일까, '치료'일까. 아니면 교육일까.

아동치료시장에서 치료사들의 질적 수준이나 민간자격증 남발 등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가 여기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갖지 못하고 있는데 있다.

물론 부모들과 치료사들은 치료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저 1~2시간 놀아주거나 그림을 보여주거나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서라면 회당 3~4만원의 비싼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치료 효과가 있다는 임상자료도 적지 않다.

반면 의사들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엄격한 트레이닝을 거쳐 제공되는 외국의 사례와 달리 국내 민간기관이나 복지관 등에서 제공되는 놀이ㆍ예술 치료 등은 치료라는 말을 붙이기에 함량 미달인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곽영숙 교수는 "놀이정신치료는 원래 언어가 제한된 소아의 정신건강을 다룰 때 놀이를 활용하는 소아정신과 기본 치료 중 하나로 의사들도 오랜 기간 트레이닝을 받아 기법을 익혀야 한다"면서 "국내에서는 정부 바우처 사업이 민간기관 위주로 진행되며 효과가 있으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의 서비스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언어ㆍ청능치료와 놀이ㆍ미술치료 등 6개 서비스를 묶어 제공하고 있지만 서비스 간에도 시선은 엇갈린다.

일례로 언어치료나 청능치료의 경우 교육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장애가 있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알맞은 교육법을 통해 일상의 불편함을 줄이겠다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 놀이치료나 예술치료의 경우 말 그대로 아동의 상태를 이전보다 좋게 하려는 치료적 목적을 가지고 행해진다. 여기다'치료'로 법적 인정을 받아 의료법 하에서 관리되는 물리ㆍ작업치료의 경우 의사의 감독 및 처방 없이 단독으로 행해질 수 없다.

이렇듯 동일하게 '치료'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목적과 방식이 모두 제 각각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문제 행동을 하거나 발달장애를 보이는 아동을 위한 최적의 치료 환경을 조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치환 실장은 "경험이 있는 의료인 등 전문가의 감독하에 복지사ㆍ물리ㆍ작업ㆍ예술ㆍ언어치료사ㆍ심리상담가 등이 팀을 구성해 접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 정설"이라면서 "물리ㆍ작업치료와 진단은 의료인이 주도하고 놀이ㆍ예술ㆍ언어치료 등은 민간치료사가 진행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전문가들의 교류가 힘들뿐더러 부모들도 이용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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