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시론] '총기참사' 성장환경도 살펴야

외톨이·폭력적·스토커… 개인 기질·성격만 부각 <br>극단 상황까지 몰고간 주변환경도 간과 말아야

[시론] '총기참사' 성장환경도 살펴야 외톨이·폭력적·스토커… 개인 기질·성격만 부각 극단 상황까지 몰고간 주변환경도 간과 말아야 이수정 조승희씨는 누구일까. 버지니아공대에서 일어난 미국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처음 보도될 때만 해도 언론은 피해상황을 보도하는 데만 주력했다. 하지만 지금 언론은 조씨의 됨됨이를 분석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나씩 파헤쳐지는 조씨의 인간성은 극악무도한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외톨이로 지내며 사회에 대한 원한에 사무쳐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했다. 인터뷰에 임한 모든 이들은 입을 모아 조씨의 괴이한 성벽과 잔인성을 묘사했다. 게다가 조씨가 사건 당일 NBC에 보낸 비디오테이프는 그의 엽기성을 더욱 강화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언론에 보도된 조씨의 인상이 그야말로 앞뒤가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조씨는 말 그대로 제정신이 아닌 외톨이(lunatic loner)였다. 심리학자 데이비스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타인이 저지른 행위를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해버리는 기질귀인(dispositional attribution), 즉 일종의 인지적 오류를 범한다고 했다. 특히 이 같은 기질귀인은 관심의 대상인 주인공이 특이한 인물일 경우 더해지는데 조씨는 그런 특이성을 모두 갖춘 존재였다. 그는 소수민족인데다 지금껏 가장 성실한 모범시민이었던 한국인이고 시정잡배가 아닌 일류대의 우수한 학생이었다. 이 같은 예외적인 사항들은 조씨 자신도 주장했듯 그를 그 같은 상황으로까지 몰고 갔을 법한 여러 가지 외부적인 측면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만든다. 특이한 사건을 관찰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환경적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발생원인은 바로 주인공의 성격이나 기질 때문이라고 황급히 간주해버린다. 조씨 사건과 관련해 언론의 인터뷰에 임했던 대부분의 사람은 그의 괴이했던 성벽에 대해서만 누차 지적하고 있다. ‘외톨이였다’ ‘과제물을 보니 매우 폭력적이었다’ ‘사실 실제 여자친구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여자들을 괴롭히는 스토커였다’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단 한마디도 응답해주지 않는 침울하고 비밀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등 조씨를 묘사하는 말들은 일관되게 그를 은밀한 폭군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의 환경이나 맥락은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이것이 바로 데이비스가 이야기한 기질귀인 현상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잠시 거리를 두고 이 사건을 지켜보자.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의 손에 끌려 낯선 나라로 이민을 간 소년이 있었다. 부모는 최상의 교육을 위해 낯선 곳으로 아이를 데려갔겠지만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수줍음 많던 소년은 거센 이방인들과의 경쟁 속에서 항상 실존적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부모는 소년의 마음의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못한 채 생계를 꾸려나가기에 급급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소년은 낯선 사람들 속에서 혼자만의 힘겨운 투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간혹 억울한 일도 있었겠지만 영어가 서투른 소년으로서는 자신을 표현하기보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면서 겉으로는 위축되고 내성적인 모습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결국 소년은 좌절된 일상에서 오는 분노와 복수심으로 고통받았을 것이며 우울증과 고립감은 그를 점점 더 심각한 부적응자로 몰아갔을 것이다. 가슴 한편이 여전히 짠한 것은 조씨가 같은 민족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어릴 때부터 받은 상처가 가히 짐작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 소년들은 부푼 꿈을 안고 유학길에 오르고 있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친지를 뒤로하고 낯선 땅으로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리도 앳된 아이들이 과연 행복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을까 하는 점을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낯선 타국에서 어린 시절 배꼽친구들과 티격태격 싸우다가도 어느새 함께 어울려 뒹구는 즐거움을 모른 채 자랄 것이다. 밖에서 억울한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등 두드려주고 격려해주는 든든한 후원자 없이 타국에서 홀로 견뎌야 하는 것이다. 조씨 사건을 보면서 최근 공항 출입구를 향해 무거운 걸음을 옮기는 어리디어린 나홀로 유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입력시간 : 2007/04/20 14:23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