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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천국을 엿보는 것과 같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모든 것을 내걸 만큼 가치 있다 했다. 단 두 글자로 가슴 뛰게 하는 아름다운 그 말, 바로 '사랑'이다. 무수한 사랑이 표류하며 유행가 가사와 상품으로 소비되는 시대.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다룬 두 편의 연극은 그래서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상에선 추하다고 욕할지도 모를 두 개의 이야기는 묻는다. 진정한 사랑은 무엇이냐고.
19세 소년이 80세 노파의 얼굴을 감싸더니 이내 입을 맞춘다. 망측하다며 고개 돌리는 이는 없다. 관객은 그저 묵묵히 바라보며 두 사람을 응원한다. 연극 '해롤드&모드'는 자살을 꿈꾸는 소년 해롤드(강하늘)와 유쾌하고 천진난만한 할머니 모드(박정자)의 이야기다.
죽을 궁리만 하던 소년은 도로 옆 콘크리트 바닥의 나무와 더러운 동물원의 물개를 훔친 엉뚱한 할머니를 만나 친구가 된다. 소년이 자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늘려가며 변화할 때,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폭발하는 아드레날린 따위와는 다른 이 독특한 사랑의 결실을. 두 사람의 사랑은 남녀 사이의 그것을 초월하는 교감이요 소통이다.
정신 상담과 맞선을 강요하는 엄마가 소년을 옥죄는 콘크리트와 동물원이라면 모드는 그 속에서 죽어가던 나무요 물개였던 해롤드를 해방시켜주는 구원 혹은 모성이다. 무대는 깔끔하다 못해 딱딱한 엄마의 파란색 집과 온갖 잡동사니가 섞여 있는 모드의 노란 집으로 나뉘어 대조적인 2개의 둥지를 극적으로 표현한다. 연극계 대모와 청춘 배우는 환상의 호흡을 빚어낸다.
박정자는 수줍은 소녀와 포근한 엄마의 감성을 오가며 어른도 여자도 아닌 휴식처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고, 강하늘도 안정적인 연기로 독특한 캐릭터와 감정선을 소화한다. 특별한 날, 해롤드는 모드에게 프러포즈를 하지만, 그녀는 '밖으로 나가 이 세상을 더 사랑하라'는 말과 함께 영원한 이별을 고한다. 그렇다고 마냥 슬픈 결말은 아니다. 시작이 끝이고 끝은 곧 시작이라는 모드의 말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2월 2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연극 '멜로드라마'는 불륜이란 소재를 통해 '사랑이 의무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결혼 10년 차 부부에게 어느 날 새로운 사랑이 다가온다. 아내 서경(배해선, 홍은희)은 자신의 직업을 인터뷰한 드라마 작가 재현(조강현, 박성훈)과, 남편 찬일(박원상, 최대훈)은 재현의 누나 미현(전경수)과 눈이 맞는다.
사랑조차 계획된 삶의 일부인 서경과 남의 심장으로 살아오다 서경을 만나 처음으로 가슴 뛰는 감정에 빠져버린 재현, 무료한 결혼 생활에 지쳐가던 찬일과 그 앞에 나타난 아이 같은 미현. 멜로드라마가 수많은 불륜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엇갈린 사랑에 갈등은 있어도 '복수 할거야'를 외칠 피해자나 '실수였다'고 변명할 가해자가 없다는 점이다.
극 중 인물들은 교통사고처럼 순식간에 덮쳐온 사랑에 설레면서도 두려워하는 평범하고 안쓰러운 사람일 뿐이다. "결혼은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약속이야. 나 그거 깨고 싶지 않아.", "담배 끊는다고 끊어지디? 결혼했다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끊어지냐고." 등 현실적인 대사와 이국적인 배경 음악에 젖어들며 관객은 비난과는 또 다른 감정으로 캐릭터에 빠져든다.
사랑은 의무가 될 수 있을까. 모두가 돌아갈 '제자리'는 과연 존재할까. 2월 15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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