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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부품·소재산업] 생존기반이 흔들린다
입력2000-02-27 00:00:00
수정
2000.02.27 00:00:00
김형기 기자
한국의 실물경제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반도체·TFT-LCD 등 한국산 첨단제품들이 세계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들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부품 및 소재산업은 갈수록 척박한 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최근 불어닥친 인터넷·벤처기업 열풍으로 고급 기술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워졌으며 글로벌 경쟁력이라는 미명 아래 완제품 업체들의 납품가격 인하 압박으로 적정마진을 확보하기도 힘들어졌다.
악조건이 누적됨으로써 부품 및 소재산업 부문에서는 기술개발이나 R&D 투자를 위한 자본축적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부품 및 소재산업의 위기는 한국 실물경제의 위기이다. 나아가 금융산업과 이제 막 태동한 사이버 경제의 위기이기도 하다. 사이버 경제를 꽃피우고 금융경제의 자생력을 키우려면 실물경제가 동반 성숙해야 한다.
한국의 부품 및 소재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이를 통해 실물경제의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본다.
경기도 파주에 본사를 두고 20년 넘게 자동차부품만 전문적으로 생산해온 A사는 최근 350억원에 공장 일체를 매각했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최근 고급 기능인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운데다 확보된 인력들마저 여기저기 오라는 곳이 많아 관리가 힘들었다』며 『특히 창업주의 대를 이을 자식들이 자동차부품업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굳혀 사업 자체를 포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결국 국내에 공장부지를 물색하던 외국기업에 매각돼 현재 자동차 부품이 아닌 다른 분야의 기업체로 변신하고 있다.
A사처럼 부품 및 소재산업 분야에서는 창업 1세대 기업인들이 은퇴할 시기가 됐으나 2세들이 가업인수를 거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공장 먼지를 먹어가며 힘들게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
아이디어와 창의력, 소규모 자금만 확보되면 떼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요즘 무엇 하러 고생을 사서 하느냐는 것이 2세들의 변이다.
게다가 코스닥시장 활황 등으로 자본시장이 제조업종을 외면하고 있고 국내 주요 완제품업체들은 하나같이 외국산 부품 및 소재만 선호하는데 미련을 떨며 먼지나는 사업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자동차 부품뿐 아니라 기계·금속·플라스틱 사출 및 성형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산업자원부가 최근 전체 수입품 현황을 조사한 결과 부품 및 소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96년의 36.4%에서 97년 38.2%, 98년 42.7%, 99년 44.9%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96년 7.0%이던 부품 및 소재 수입비중이 97년 8.9%, 98년 13.1%, 99년 13.6%로 해마다 불어나 불과 4년 만에 두배 가량 신장했다.
이러다 보니 국내 부품 및 소재산업의 생존기반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산업인 자동차의 경우 97년 1,339개사에 달했던 자동차부품 및 소재업체 수가 98년 1,166개사로 줄어들었으며 지난해에는 1,000개사 미만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 부품 및 소재산업의 위기는 기술 개발의 필수요소인 고급인력과 자금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점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완제품업체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구조조정의 여파가 고스란히 전가됐다는 점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명제 아래 글로벌 소싱이 보편화되고 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자본축적을 허용하지 않는 완제품업체들의 초저마진율 적용 국산부품 및 소재라면 무조건 한 수 접고 보는 왜곡된 시각 등도 부품 및 소재산업의 환경을 척박하게 만드는 요소다. 특히 완성품업체들의 왜곡된 시각은 부품 및 소재 국산화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드는 주요인이다.
최근 휴대폰단말기용 핵심부품 개발에 성공한 S사.
이 회사는 최근 미국 등으로부터 전량 수입하던 칩부품을 국산화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이를 보상해줄 수요처 확보에는 실패했다. 안정된 품질수준을 검증받지 못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자동차부품인 사이클론감속기를 개발한 J기연, 무선호출기용 초박형 회로기판 설계에 성공한 H신기술 등도 완제품업체들의 냉대로 막대한 개발비를 회수하지 못하고 전업 또는 파산했다.
국내 반도체업체의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 『지금은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라며 『단 하나의 부품이라도 품질안정이 보장되지 않으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리스크를 떠안을 수 없다는 완제품업체들의 너무나 당연한 논리이다.
이에 맞서 스스로 당당하게 생존해야 하는 국내 부품 및 소재산업 앞에는 사활의 위기만 대기하고 있다.
김형기기자K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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