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1,655개. 올해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한국직업사전에 나와있는 우리나라 직업의 숫자다. 2003년 7,980개였던 직업의 수는 10년도 채 안되는 기간 3,600여 개나 증가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형태의 일이 생겨나고 있다. 고를 수 있는 직업은 많아졌다고 볼 수 있지만 자신에게 적합한 일이 무엇인지 알기에는 더 어려워진 셈이다.
지난해 한 취업 포털사이트 설문조사에서는 전체 직장인 가운데 부적응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44%, 대학생 가운데 전공을 바꾸고 싶어하는 비율이 52%로 나타났다.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은 대학생들은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고, 바늘 구멍보다 좁아 보이는 취업의 문을 통과한 직장인들은 자신의 직업에 불만이 가득하다.
대학의 수와 학과별 정원이 정해져 있고, 이른바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기업 입사 경쟁률이 수백 대 1에 달하다 보니 원하는 대학과 전공, 직장을 만나기 힘들다. 그러나 그에 앞서 자신의 적성과 꿈을 고려하지 않고 상황과 조건에 따라 전공이나 직업을 선택한 결과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한국고용정보원의 2008년 진로교육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장래희망이 아예 없다고 대답한 비율이 중학생의 경우 34.4%, 고등학생은 32.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고생이 장래희망을 결정하지 못한 이유로는 '아직 찾지 못해서', '무엇을 잘 할 수 있나 몰라서'라는 대답이 절반 이상이었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 아이들에게 미래를 제시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청소년들이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파악하고 여러 직업들에 대해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는 체험 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도 지난 1월 모든 중학생의 재학 중 한 번 이상 직업 체험을 의무화하겠다는 진로교육 활성화 추진계획을 내놓고 올해 전격 시행 중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달 14개 중학교 3,938명을 1,000여 곳의 일터로 보내 직업 체험 교육을 진행한다. 지난 10일에는 관악중학교 학생들이 2~5명씩 소규모로 나뉘어 체험행사를 가졌다. 학생들이 꿈꾸거나 체험해보고 싶은 일터는 한의원이나 동물병원부터 꽃집, 서점, 슈퍼마켓 등까지 다양했다. 작가를 꿈꾸고 있는 이 학교 2학년 나윤성군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을 찾아 문인들과 만나 대화하는 시간을 보냈다. 현장에서 짤막한 추리소설을 써본 뒤 김성규 시인의 평가도 직접 들었다. 나 군은 "시인께서 스토리는 좋은데 단서와 단서간의 연관성이 조금 떨어진다는 지적을 해주셨다"며 "작가라는 꿈에 조금 더 다가선 기분"이라고 좋아했다. 장래희망이 소방관인 변웅섭군은 관악소방서를 방문했다. 소방관들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살펴보고 소방관 복장으로 물도 뿜어본 변 군은 소방관이 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
학교에서의 진로 교육만으로는 부족한 청소년ㆍ학부모를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부문에서도 잇달아 직업 체험시설을 열고 있다.
강동구는 서울 자치구 가운데 처음으로 지난달 26일 구천면로에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 '상상팡팡'을 개관했다. 상상팡팡은 청소년들에게 적성검사와 학습습관 유형 파악, 교육전문가와의 1대 1상담을 제공한다. 또 학생이 자기 진로에 맞는 직업을 본격적으로 탐구하는 '직업탐구 기자단'프로그램을 개설해 1만여 개의 직업들을 ▦미디어ㆍ엔터테인먼트 ▦금융ㆍ개인 서비스 등 6개의 산업군으로 분류해 4회에 걸쳐 알아보고 실제 해당 직종 종사자와 인터뷰를 하는 기회를 갖는다. 상상팡팡은 화~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되며 현재 방학 맞이 7~8월 프로그램 참가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 문의는 인터넷 홈페이지(3388.gd.go.kr)나 전화(481-7088)로 하면 된다.
상상팡팡처럼 오는 9월까지 금천구와 노원구도 각각 진로직업체험센터를 연다. 금천구와 노원구는 점차 25개 자치구 전체로 센터를 늘일 계획이다. 강원도교육청도 2014년 개원을 목표로 진로검사부터 상담ㆍ멘토링ㆍ체험을 한 번에 지원할 수 있는 '강원학생진로교육원'을 만들고 있다.
지난 5월 15일 개장해 2달째에 접어드는 경기도 분당의 한국잡월드는 국내 유일의 종합 직업전시체험시설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직업세계관ㆍ어린이체험관ㆍ청소년체험관ㆍ진로설계관 등 4개의 전시체험시설로 구성돼 있으며 이 가운데 어린이·청소년 체험관의 80개 체험실에서는 110개의 직업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한국잡월드는(www.koreajobworld.or.kr)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운영되며 매주 월요일은 쉰다. 입장료는 어린이ㆍ청소년이 3,000원, 어른 4,000원이며 별도 체험료(4,000~1만5,000원)가 있다.
한국잡월드 이용객은 지난달 말 기준 10만1,650명으로 하루 평균 2,479명이 다녀가고 있으며 방학을 맞아 체험객은 더욱 늘 전망이다. 다만 이 같은 시설이 거의 없다 보니 지방에서까지 방문객이 몰리며 혼잡을 겪고 있다. 지난 14일 아이와 함께 이곳을 방문한 김 모(35)씨는 "놀이동산처럼 체험관마다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서른 개가 넘는 어린이 체험관 중 네 곳 밖에 못 둘러봤다"고 말했다.
이밖에 서울 잠실에 위치한 키자니아, 영등포 하자센터 등도 직업 체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둔 최명선(39)씨는 "아이들이 놀이하듯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직업체험시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지역마다 시설 유치가 힘들다면 각 학교들이 주도해 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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