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한국 치즈 메카' 전북 임실, 동화 속 치즈 세상… '쫀득쫀득한 추억' 쌓으세요

한국전쟁때 벨기에 출신 신부 부임… 산양 젖으로 만든 치즈사업 성공

테마파크서 임실치즈 역사 한눈에… 다양한 유럽음식 만들기 체험까지

고려·조선 건국설화 깃들여진 성수산 자연휴양림서 힐링도 만끽

임실치즈테마파크에는 N치즈체험관, 프로마쥬레스토랑, 유가공공장, 농·특산물판매장과 치즈과학연구소가 조성돼있어 임실치즈의 역사와 현황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임실치즈테마파크를 찾은 학생들이 치즈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5년이 흐른 지난 1958년 전라북도 임실은 그저 가난한 시골이었다. 외지인들에게 내세울 만한 이렇다 할 특산품도, 관광지도 없는 그저 순박한 벽촌이었다. 그런 임실에 벨기에 출신의 지정환(본명 디디에 세스테벤스) 신부가 선교사로 부임했다. 지정환 신부가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전쟁 때문이었다. 한국전쟁의 발발을 지켜보면서 '세계 3차대전이 시작되는 줄 알았다'는 지 신부는 동료들이 참전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가서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방식은 달랐다. 친구들은 총을 들고 왔지만 그의 손에는 성경이 들려 있었다.



◇산양 두 마리로 시작한 치즈사업
=1959년 지 신부가 전주교구로 부임한 뒤 벌인 일은 간척사업이다. 그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농사 지을 땅을 마련해주기 위해 부안군의 바닷물을 막아 여의도 두 배 면적의 간척지를 만들었다.

부안 다음으로 부임한 곳은 임실이었다. 그가 오늘날 한국 치즈의 산실로 만들어 놓은 임실은 산양 두 마리에서부터 시작했다. 알고 지내던 신부로부터 선물 받은 산양 두 마리로 '무얼 할까' 고민하던 지 신부는 산양 젖으로 치즈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한다. 처음에는 산양 젖을 짜서 팔았는데 남은 젖을 버리기가 아까워 저장성이 좋은 치즈로 만들어두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치즈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치즈 제조에 실패를 거듭하던 그는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이탈리아 등을 전전하면서 기술을 배워 돌아왔다. 그리고 1969년 그는 마침내 치즈제조에 성공한다. 처음에는 그저 한편의 상상이나 동화처럼 생각됐던 일이 그의 땀과 노력을 만나면서 마침내 현실화한 것이다.

◇임실의 명소 '치즈테마파크'=그렇게 움을 튼 낙농업은 이제 임실의 얼굴이 됐다. 기자가 임실군 성수면 도인리 '치즈테마파크'를 찾은 날은 평일임에도 전국 각지에서 견학을 온 학생과 관광객들로 넘쳐 났다. 임실치즈테마파크는 임실N치즈체험관, 프로마쥬레스토랑, 유가공 공장, 농·특산물판매장과 임실치즈과학연구소가 집적화돼 있어 방문객들은 이곳들을 둘러보면 임실치즈의 역사와 현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임실치즈테마파크의 규모는 총 13만㎡ 규모로 테마파크 내 각종 체험관에서는 임실치즈와 피자 만들기, 유럽정통음식 만들기 등 다채로운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최경 사업개발부장은 이와 관련, "홍보관에서는 임실치즈가 탄생하기까지의 역사를 보여주고 유가공 공장에서는 치즈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익히는 견학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며 "테마파크는 직접 보고 만지고 맛보며 느끼는 체험교육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실군은 다음달 8~11일 임실치즈테마파크 일원에서 '2015임실N치즈축제'를 개최한다. 문의는 (063)643-2300, 홈페이지(http://www.cheesepark.kr/korean/)로 하면 된다.

◇성수산 자연휴양림=임실의 명산인 성수산의 높이는 876m에 불과하다. 하지만 계곡이 깊고 숲이 울창하며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전망이 트여 있다. 성수산 자연휴양림안에는 야영시설과 취사시설, 산림욕장 등이 갖춰져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성수산에는 고려와 조선의 건국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신라말기 도선대사는 성수산의 산세가 비범해 천자를 맞이할 성지인 것을 알고 왕건에게 이 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면 대망을 성취할 것이라고 권했다. 백일기도를 마쳤는데도 별다른 일이 없자 왕건은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에 목욕재계하고 다시 3일간 간절히 소망을 빈 끝에 관음보살의 계시를 받았다. 크게 기뻐한 그는 그곳을 환희담(歡喜潭)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성계와 관련한 건국설화도 전해온다.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를 섬멸하고 남원을 지나 전주로 가던 중 도참설의 대가인 무학대사가 이성계를 성수산으로 안내했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기도한 끝에 용이 나타나 자신의 몸을 세 번 씻어주는 길몽을 꿨다. 그는 크게 기뻐하며 붓을 들어 그곳 바위에 삼청동(三淸洞)이라는 글씨를 남겼다. 이 글씨는 상이암 앞에 비석으로 남아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성수면 성수산길 373

/글·사진(임실)=우현석객원기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