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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통일과 증시


지난 1990년 초 동독 사람들은 사상 처음으로 치러지는 자유선거를 앞두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해 3월18일 선거를 통해 구성될 국회는 사회보장제도와 일자리, 화폐 등 통일 이후의 중요한 현안을 다루는 국회였다. 동독 유권자들은 자유로운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직접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통일 열망에 들뜬 사람들은 유권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서독의 정당들은 이제 막 다당제가 열리는 동독에 자매 정당을 만들어 통일 이후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애를 썼다. 여기에 헬무트 콜 수상까지 나서 당시 여당인 기민당(CDU)의 선거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포퓰리즘적 공약을 쏟아 냈다. 콜은 "동독의 복지를 5년 안에 서독 수준으로 올려 놓겠다"는 엄청난 약속을 했다.

콜은 그 첫 단계로 동ㆍ서독 화폐를 1대1로 교환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무역 거래에서 공식 교환비율이 4.4대1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동독의 환심을 사기 위해 파격적인 조치를 취한 셈이다.

표를 의식한 서독의 퍼주기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동독인들의 대규모 서독 이주를 막는 것이 급선무였던 독일 정부로서는 서독의 사회보장제도를 그대로 동독에 도입했다. 그 대가는 엄청난 통일비용으로 돌아왔다. 독일정부는 1990년 10월3일 통일 이후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무려 2조유로의 자금을 동독에 쏟아부었다. 이를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2,918조원으로 올해 우리나라 예산의 9배가 넘는다.

독일도 20년 이상 재정 부담

이처럼 엄청난 재정부담은 주식시장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독일 증시는 베를린 장벽 붕괴 초기에는 통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반짝 상승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재정부담 문제가 부각되면서 이내 하락세로 돌아섰다. 독일의 닥스(DAX)지수는 장벽이 붕괴된 1989년 11월9일 1,462.96에서 1990년 5월9일 1,865로 27%나 급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통일이 선포된 직후인 1990년 10월4일에는 1,438을 기록하면서 장벽 붕괴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이제 좋든 싫든 통일에 대한 대비에 나서야 할 때가 됐다. 그러면 남북 통일은 국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통일은 내수 기반을 키워준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다. 문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동서독의 경제력 격차가 3배 수준에 불과했던 독일이 20년 동안 통일비용의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점을 감안하면 남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북한의 19배에 달하는 현실에서는 통일에 따른 부담이 독일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북한의 소득을 남한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정부 지원만 2,000조원 이상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로 재정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이 같은 통일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면 증시를 비롯한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포퓰리즘적 공약 경계해야

여기에 포퓰리즘적 공약까지 끼어들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현재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야 간의 선심성 공약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통일 과정에서 이런 일이 더 심해지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현재 대선에서 불과 몇 십만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적 공약이 난무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

최근 유럽 위기와 글로벌 경기침체로 우리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려운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통일 문제가 가세한다면 증시를 비롯한 경제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다가오는 통일을 피할 수는 없다. 다만 독일에서 보듯이 통일 과정에서 포퓰리즘적 공약으로 경제 부담이 가중되는 일이 없도록 정치권이 차분히 대응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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