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경제의 민주화는 무엇인가. 정치인들은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경우 기업의 신규 투자 없이는 경제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도, 반기업 정서로서의 경제 민주화 주장이 조만간 자가당착에 빠진다는 것도 알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 민주화는 자본주의의 중요한 골격인 기업을 부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창의성과 모험심이 발휘될 수 있는 기업은 경제 민주화 논의의 전제다.
순환출자, 공시 강화로 해결 가능
지난 1960년대 미국에서 논의됐던 경제 민주화는 기업의 본질과 관련돼 있다. 기업이 주주 이익 극대화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이익을 위해 운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공개기업의 경우 이사회에 사회 전체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소수자, 예를 들면 흑인이나 여성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의미의 민주화는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과 관련해 논의됐다. 기업의 의사결정에 이사회가 아닌 주주가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주주 제안권이나 대표소송이 광범위하게 도입됐다.
이러한 가정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해한다면 경제 민주화는 한 국가나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부익부 빈익빈 정도가 지나쳐서 사회 전체의 공동체 의식이 저하되는 것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이는 공공선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 권력 행사로 가능하며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지금 미국 대선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대책은 경영자의 지나친 보수에 대한 제한, 금융산업에 대한 보다 엄격한 통제, 중산층 감세와 부유층 과세 강화 등이다. 우리의 경우 출자총액제한, 부의 세습에 대한 과세나 금산분리 강화 등이 추가로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지극히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순환출자 금지ㆍ해소, 주식 소유 비율과 지배력의 비율 조정, 일감 몰아주기 금지를 위한 새로운 입법은 경제 정책으로 바람직한 것인지, 법리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순환출자나 기업을 통한 지배력 행사가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또는 자본이 공동화돼 경기 하강 국면에서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기업집단이 흔들릴 가능성 때문에 걱정된다면 공시와 지주회사에 대한 규율을 강화해 해결하면 된다. 일감 몰아주기는 지배주주의 이익과 기업 전체의 이익을 구분해 충실의무 위반과 배임으로 처벌하면 된다. 문제는 법률의 부재가 아니라 일관성 있는 강력한 집행이다.
금융사 지배구조 재검토 불가피
경제 민주화가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기업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경영돼야 한다는 것이라면 이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문제다. 정부가 제출한 금융회사지배구조개선법 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상장기업의 지배구조를 보다 근본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우선 이사회의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구성하고 이들의 추천 절차에 대한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지배주주와 기업간 이해 충돌 시 보다 엄격한 판단 기준과 책임 추궁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지배주주가 기업 이름으로 행하는 시혜적 기부 행위 역시 절차ㆍ실체 면에서 규율이 필요하다. 나아가 기업의 준법 경영을 위한 제반 제도를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한다.
상장기업에 투자한 개인투자자가 1,000만명을 넘는다. 이들의 투자는 기업이 이익을 내 기업가치가 상승할 때 보호된다. 그러나 기업의 이익은 사회 전체의 이익과 적법한 경영을 전제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의 민주화 논의가 기업의 존재 이유와 상치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투자 기회를 제공하고 국민 경제의 자본 축적을 위한 기업 제도를 전제로 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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