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전쟁이 터졌다. 글로벌 기업들 끼리다. 1차 전은 미국 내 자동차업계에서 결판이 났다. 미국의 체면이 구겨졌다. 전자업계에도 포연은 자욱하다. 마치 태평양을 사이에 둔 세계대전을 연상시키는 구도다. 날로 확대되고 있는 글로벌 기업전의 양상과 앞날을 전망해본다.』 금융 및 제조. 로마 이래 제국이라는 미국의 버팀목이 돼온 양대 업종이다. 막강 월스트릿-재무부(W-T) 체제로 세계 돈줄을 거머쥐고 한쪽에선 군산(軍産) 복합체제의 토대 위에 초일류 기업들로 세계 제조업계를 주물러 온 미국 경제에 자존심이 흔들리고 있다. 황색바람, 한국과 일본 기업들의 협공에 중국까지 따라 붙으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주식회사 미국’의 시대는 가는가. 상대적으로 굳건한 금융부문과는 달리 미 제조업의 퇴색 조짐은 글로벌 기업 대전에서 특히 눈 여겨 주목해야 할 관전 포인트다. ▦포연(砲煙), 자동차에서 전자로=지난 5일 미국의 자존심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의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추락한 소식이 일제히 외신을 탔다.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긴 했지만 막상 미국을 대표하는 거대 기업채가 줄줄이 정크 본드로 추락하자 자본 시장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관련된 헤지펀드와 은행권의 추정 손실액 320억 달러. 금융시장 위기설과 함께 불똥은 자동차 부품업계로도 튀며 미 전(全) 산업에 후 폭풍의 여파를 미치고 있다. 일본 그리고 한국의 자동차 기업. 미국의 대표 업종 대표 기업을 초라하게 주저앉힌 외부로부터의 주적들이다. 1차 결판이 난 자동차업계의 판도 변화를 능가하는 글로벌 전자업계의 혼돈은 세계 전지역에 걸쳐 한층 복잡한 양상이다. 군(群)별 제품이 워낙 다양한 데다 각각의 제조사들도 많아 대결의 양상이 훨씬 어지럽기 때문이다. 그 중 최근 들어 두드러진 패턴 하나. 다름 아닌 한국을 겨냥한 글로벌 업체들의 전방위 공세다. 디지털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반도체에 이어 디스플레이, 가전, MP3플레이어 등 전자산업에서 한국 업체들의 영역 확장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글로벌 업체들의 반격이 이제 본격화 하고 있다.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한 자동차업계의 전투가 한 고비를 넘기는 사이 포연은 전자업계쪽에서 피어 오르고 있다. ▦초일류의 위기, 흔들리는 미 제조업=‘미국 제조업의 사망’ GM과 포드의 처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내 초일류 기업들이 줄줄이 휘청거리는 것에 대한 일부 언론들의 선정적 표현이다. PC 업체의 대명사 IBM의 경우 실적이 악화되며 이달 초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1만명이 넘는 직원을 해고했고 경영난의 HP는 새로운 구조조정을 계획중이다. MS도 예전 같지 않다. 리눅스 등 오픈 소스들이 기술 발전을 계기로 속속 도전장을 내밀고 있고 야심만만하게 추진했던 엠.홈(M.Home)의 상품화 가능성도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코닥을 비롯 신용 등급이 줄줄이 추락하는 초우량 기업들로 최상위인 ‘트리플 A’ 등급의 비금융 미국 회사는 6개사에 불과하다. 전세계적 성장 둔화에 따른 경영 환경적 요인들도 있지만 이 같은 결과는 미국 기업 자체의 구조적 문제가 더 큰 원인이다. 특히 전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미 자동차업계의 몰락은 무엇보다 과도한 차입, 소비자 욕구 외면 등 경영의 기본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고질적 노조 문제가 겹치며 하루가 달라지는 시장의 요구에 능동적이고 발 빠르게 대처치 못한 결과다. 일반적으로 산업구조상 1인당 국민 소득이 4만 달러를 넘어선 국가가 전통 제조업을 지속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견해가 있다. 미국의 제조업이 철강과 섬유 및 전자 등 분야에서 점차 손을 떼고 금융과 IT 및 우주항공 분야에 주력할 것이란 근거로도 들을 수 있다. ▦황색 돌풍, 복잡해지는 전황(戰況)=글로벌 기업대전은 특히 한일중 동북아로부터 불어오는 황색바람을 타고 불길이 전방위로 번져나가고 있다. 미국과 함께 세계 제조업을 끌어온 일본을 필두로 글로벌 기업 지도를 최근 다시 그려 내는 한국, 급속히 떠오르는 중국은 거시(巨視)는 물론 미시적으로도 향후 글로벌 기업 질서의 최대 변수다. 아직은 세계적 기업들이 많지 않지만 중국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실력을 키워나갈 경우 전체적으론 누가 뭐래도 여전히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까지도 위협 받을 수 있다. 자동차와 전자업계에 이어 기업 대전은 전세계적으로 화학 유통 서비스 등 산업 전 분야로의 확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A&D(인수 및 개발), 전략적 제휴, 글로컬라이제이션(현지화 경영) 아웃소싱 등과 같은 글로벌 경영의 양태가 다양화하고 특히 기업간 적대적 M&A 위협성은 더욱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 경쟁국보다 최소 10년은 앞서 있다는 미국의 ‘철옹성’ 금융산업의 경우도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게 글로벌 경제의 살벌한 현실이다. 지금은 제조업이지만 각국 산업 망떠?보다 고도화되면서 의외로 빠른 시일 내 미국의 금융업도 글로벌 기업 대전에 휘말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정치 경제적으로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다극화하는 경향 속 제 아무리 미국 기업들의 경우라도 과거와 같은 절대적 지위를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 때문이다. 국적불문(國籍不問), 다자(多者)간 형태로 확전일로를 걷고 있는 글로벌 기업 전쟁. 그 혹독한 승부의 장(場)에 ‘절대 지존’이란 이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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