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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06> ‘인내의 열매’ 달기만 한 건 아니에요


오랫동안 공들이며 기다려온 일이 마침내 결실을 맺을 때 그 기쁨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특히 인내의 기간이 길고 과정이 힘들었다면 열매는 더 달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인내란 단어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참으면 복이 온다는 마음가짐으로 내게 닥친 고통과 어려움을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게 미덕인 것은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기다림의 방향이 올바르지 않은 경우에는 인내의 시간만큼 일이 틀어지기도 합니다. 밟으면 밟을수록 밟고 싶은 대상이 되고 마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죠.

화도 내던 사람에게만 냅니다. 요즘 직장에는 ‘샌드백 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부서 내에서 실수가 잦은 누군가를 골라서 집중적으로 타격하는 겁니다. 회의 도중에 ‘샌드백’에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습관입니다. 자신의 권위를 과시함과 동시에 어디에선가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행태입니다. 과거 로마 시대의 검투사 경기와 비슷합니다. 사자나 다른 검투사들과의 싸움에 사람을 내몰아 놓고, 그가 고통스럽게 생존을 위해 난관을 이겨 나가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 그리고 자신은 어떤 감정을 소비해도 징벌과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즐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 밑에서 열심히 참고 견뎌 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열정을 강요해 놓고 단물만 빼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도 그때는 그랬어’라며 상대방의 노력 봉사를 강요하는 상사는 감언이설로 부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자신도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 상사를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그렇지만 노력한 이후의 대가는 때때로 가혹합니다. ‘우리 조금만 기다리자. 오늘은 이 친구에게 인사고과를 밀어줘야 해. 더 기다리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우리는 식구잖아.’ 가족을 착취하고 인내를 강요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저 수사일 뿐인 것이죠.

이따금 권력자들끼리 뒷거래가 오고 가는 정치권에서도 인내의 열매는 꼭 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참자는 항상 고참의 영광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언젠가 자신에게 돌아올 내일을 생각하면서 열정 페이를 받는 겁니다. 선배의 정책을 위한 아이디어를 대신 내거나 당선을 위한 조직적 활동 등을 해 주면서 굳은 일을 마다 하지 않는 것은 기본입니다. 때때로 자기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가면서 누군가를 도와줘야 하는 게 통례인가 봅니다. 받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것도 밝은 내일을 보기 위한 하나의 초석이 될 것’이라며 열심히 요구하고, 또 요구합니다. 그런 가운데 누구도 자신 있게 ‘안됩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없겠죠.



일단 누군가와 함께 존재하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한다면, 그것은 절대 신뢰와 의리라고 볼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폐를 끼치고 있는 겁니다. 샌드백에 화풀이를 반복하는 상사 여러분, 당신의 부하는 당신을 인간적으로 존경해서가 아니라 권위와 힘에 의해 복종하고 있는 겁니다. 그에게 강요한 인내와 노력을 열정이라고 장식하지 마십시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 날이 있을 겁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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