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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표절 논란으로 본 한국 문단의 민낯

작가는 무감각… 출판사는 감싸기 급급…

"문화권력 카르텔, 곪았던 상처 터졌다"



과거에도 크고작은 표절논란 많았지만 고소 사례는 한건도 없고 문단은 침묵

네티즌 불매운동 등 적극 대응 움직임… "이번엔 변화 계기로" 기대섞인 목소리


"터질 게 터졌다."

신경숙(사진) 소설가의 표절 논란에 대해 문단 내부에서는 곪았던 염증이 터져 나온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유독 다른 작가들에 비해 표절 시비가 빈번했던 신경숙 소설가의 도덕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지적이 특정 작가와 출판사만을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 표절 논란에 무감각한 일부 작가,

그런 작가를 키우고 비호해온 대형출판사의 태도 등 한국 문단의 민낯을 향한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은 지난 16일 소설가 겸 시인인 이응준씨가 한 온라인 매체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실으면서 불거졌다. 그는 신경숙 작가가 1996년 발표한 단편 '전설'의 한 부분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우국, 연회는 끝나고')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신경숙 '전설')



이응준 소설가는 "순수문학 프로작가로서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명백한 '작품 절도행위―표절'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신 작가의 경우 지난 1999년 발표한 소설 '딸기밭'과 장편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등에서 표절 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누구보다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동료 작가가 문단을 떠날 각오를 하고 문제 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파가 더 켜졌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여전히 표절을 대하는 문단의 태도가 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신경숙 작가는 논란이 일자 '전설'의 출간사인 창비를 통해 '책(우국)을 읽어 본 적이 없으며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창비는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문장 자체나 앞뒤 맥락을 고려해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해명했다.

작가는 표절 여부를 떠나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출판사는 작가를 비호하기 바쁘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신경숙 작가 본인이 납득할만한 해명을 하는 것이 맞고, 출판사는 말도 안 되는 해명은 그만두고 좋은 작가를 키울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절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도 크고 작은 표절 논란이 있었다. 스타 작가인 황석영, 조경란 작가의 표절 논란뿐 아니라 미발표작을 표절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부분 표절 논란에 휩싸인 작가들의 책을 낸 곳이 대형출판사라 작품 활동을 하고 싶은 대다수의 작가들은 문제 제기를 쉽사리 하지 못했으며, 설령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에도 평론가들과 대형출판사들의 '카르텔'에 의해 표절 논란은 묻히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구조 탓에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보호과에 표절로 고소를 하는 사례는 지금껏 단 한 차례도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표절논란에 대한 문단의 대응이 과거와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네티즌들의 움직임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만큼 출판계 일각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표절 등 문단의 문제점들이 개선될 수도 있다는 기대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상에서는 창비 불매 운동을 거론하는 등 출판사의 해명을 거세게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소설가는 "네티즌들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있어 이번에는 문단에 큰 타격이 있을 것 같다"며 "작가들이 조금 더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대형출판사 등 문화권력을 가진 이들의 행태가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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