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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김영란법의 오해와 진실

고광본 정치부 기자

“내가 책임지고 통과 안 되도록 노력하겠다. 통과되더라도 최대한 적용 범위를 줄이도록 조율 중이다.” 새누리당의 한 고위관계자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해 법사위에 회부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에 대해 12일 사석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털어 놓은 말이다. 그는 “여론이 하라고 하니까 안할 수 없어 했는데 위헌 우려 등 문제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여야 지도부나 의원 중에서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김영란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하면서도 사석에서는 “걱정이다. 누가 좀 막아 달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야 지도부가 “2월 국회에서 김영란법을 우선 처리하겠다”고 했지만 앞으로 법사위를 거치며 적지 않은 손질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김영란법이 국회 정무위를 통과한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이 법은 대법관 출신의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스폰서 검사, 떡값 검사가 부정한 돈을 받고도 업무 관련성이 없다는 핑계로 처벌을 받지 않았던 허점을 보완해 지난 2012년 내놓았다.

특히 김영란법은 공직자 등이 100만원 이상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과 상관없이 형사처벌이나 수수금품 5배이하 벌금에 처하고 100만원 이하는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 과태료를 물리도록 하고 있다. 다만 100만원 이하를 받아도 3회 이상이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더욱이 공직자와 공공기관 종사자, 공·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사 관계자 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도 청렴 의무를 지웠다는 점이 특징이다. 총 2,000여만 명에 달하는 가족이 금품·향응·선물을 받더라도 당사자(185만여 명)가 처벌을 받게 된다. 그동안 일부 공직자와 공공기관, 학교, 지방언론 등에서 부패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는 점에서 마치 사회 전체적으로 햇볕을 쬐어 구석구석 곰팡이를 제거하는 혁명적 발상으로 볼 수 있다. 정우택 국회 정무위원장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부패지수가 높고, 지난해만 해도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각종 원전과 방산 비리도 터져 나왔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김영란법은 훌륭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뭔가 거쳐야 할 단계를 훌쩍 뛰어 넘어 추진되는 감이 없지 않다. 우선 광범위한 적용대상과 엄격한 법 적용에 따른 과잉입법 우려가 불거지면 자칫 법이 사문화하는 방향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 정무위의 한 관계자는 “당초에는 사립학교 교직원과 민간 언론사는 대상이 아니었지만, 형평성이나 여론에 떠밀려 법을 통과시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민간인의 공적 영역 종사자에 대한 고소·고발 사태가 난무하는 가운데 정권이나 수사·사정기관에 찍힌 사람들이 주로 표적이 될 우려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동안 ‘제식구 봐주기’ 식의 편의적인 법망을 적용해 적지 않은 특권을 누려온 법원이나 검찰, 경찰 종사자에게는 솜방망이 식으로 적용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국가보안법처럼 자칫 이현령비현령 식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무엇보다 김영란법이 2월 국회에서 통과돼 내년 2월부터 시행될 경우 선물 관련 업종의 매출이 줄고 식당이나 술집, 골프장 등에 미칠 타격도 적지 않을 전망이라는 점도 참작해야 한다.

물론 부패근절이 사회정의와 국가경쟁력 향상의 첩경이라는 점에서 김영란법은 당연히 찬성하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찬찬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kbg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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