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32> 악연에서 선연(善緣)으로


불가에서는 이 생애의 인연이 전생의 업보에서 출발했다고 말합니다. 이른바 열 두가지 인연, 12연기(緣起)의 논리입니다. ‘과보’, 즉 과거의 행동에서 비롯된 응분의 대가와 보상이 현재에 반영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불교에서는 지금 누군가가 밉거나 좋다면, 분명 전생에 그와 또 다른 성질의 관계였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설법할 때의 일입니다. 그는 연설 원고를 정하지 않고 즉문즉답으로 대중들을 이끄는 것을 즐기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수 십 명을 모아 놓고도 우렁찬 강의를 할 수 있어서 그의 말씀을 ‘사자후’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석가의 가르침을 반기지 않는 자들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묘한 것은 석가는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잔뜩 찌푸려진 표정, 반갑지 않아 하는 표정이 점진적으로 펴지고 나중에는 만면에 웃음을 띄기까지 설법을 했다고 합니다. 불교의 인연에 대한 이론에 입각해서 보면, 상대방과 자신의 인연이 좋지 않은 것에서 좋은 것으로 바뀌기까지 노력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작고한 다케시타 노보루 전 일본 총리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을 불교적인 의미를 빌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 깊숙이 들어가서, 그의 마음이 되었다가 다시 나의 마음으로 이끌어 오는 작업이다.’ 누군가와 마음에 앙금이 쌓였거나 대화가 되지 않을 때에는 충분히 그의 입장이 되었다가, 때에 따라 자신의 입장으로 끌고 올 수 있는,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이 동반된 것이 바로 ‘설득의 힘’이라는 겁니다.

‘악연’에서 ‘선연’으로. 정말 어렵습니다. 아주 좋은 친구였다가 특정한 이해관계나 사안에 따라 견해를 달리하는 경우에도 악연으로 전락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상대방과 나는 운명 공동체였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반대 의견에 좌절하는 일도 많습니다. ‘아, 우리 사이가 이것 만큼 밖에 안 되나?’ 또는 ‘믿는 자에게 발등 찍힌다더니’ 하면서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대통령과 국회 관계가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전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의회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전략적인 혜안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미온적이거나 반대 의견을 품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서 단정하고 솔직하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피력하는 적극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의 정당 지도자들은 좀처럼 하지 못하는 감수성 어린 모습과 솔직함이 박 대통령을 오늘의 자리에 앉게 한 원동력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그 주변의 조직이 강력한 연대감과 나름대로의 이익과 가치로 묶인 것도 무시 못할 요인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선연’조차 ‘악연’으로 바뀔 수도 있는 백척간두의 상황입니다. 국회는 행정입법에 대해 ‘모법’을 거스를 수 있는,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며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가장 강력한 박 대통령의 동료가 ‘다른 말’을 하는 것을 참아내기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딛고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듣고 찌푸린 얼굴이 웃을 때까지 설득하고, 또 주문해야 하는 적극성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의 리더는 갈등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iluvny23@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