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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권리금 이대론 안된다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K씨는 지난해에 재산을 거의 송두리째 날렸다.

K씨는 나이 50에 명예퇴직을 하면서 받은 퇴직금과 위로금 2억원에,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1억원을 합친 3억원으로 지난 2009년 말 고깃집을 시작했다. 하지만 창업 2년이 지난 지금 그의 손에는 겨우 점포 보증금 1억원만 남아 있을 뿐이다.

불행은 점포 권리금에서부터 시작됐다.

고깃집을 하려고 점포를 보러 다니던 2009년 여름 그는 적당한 자리를 하나 찾았다.

부동산 중개업자와 찾아본 점포는 손님들의 발길도 웬만큼 이어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페인트 냄새도 안 가셨을 만큼 인테리어가 깔끔했다.

전 주인은 권리금 1억원을 요구했다. K씨는 자금이 넉넉지는 않았지만, 가게가 워낙 마음에 들어 몇 차례의 실랑이 끝에 1,000만원을 깎아 9,000만원을 지불하고 점포를 인수했다.

보증금 1억원에 권리금 9,000만원, 집기비용 등 총 2억4,000만원을 들여 인수한 식당은 점심장사는 그럭저럭 됐다.

법적 보호 장치 없어 피해 속출

하지만 지역 특성상 근처 직장인들은 저녁만 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 식당에는 파리만 날렸다. K씨는 2년을 버틴 끝에 최근 식당 문을 닫았다. 운영자금으로 갖고 시작했던 6,000만원은 진작 바닥났고, 카드빚 2,000만원까지 돌려 썼지만 형편이 나아질 기미가 없어 폐업을 결심했다.

K씨는 점포를 내놓으면 권리금은 챙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매물로 내놓은 점포는 나갈 기미가 안 보인다. 그는 쌓여가는 적자에 권리금을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또 다른 자영업자 L씨도 권리금 때문에 큰 손해를 봤다. 얼마 전까지 운영하던 대형 슈퍼마켓을 내놓자 SSM을 운영하는 대형유통업체가 달려들었다. 이 대기업은 건물주와 직접 담판을 벌여 권리금 없이 점포를 임대키로 했다. L씨는 권리금 한 푼 못 받고 쫓겨나게 생겼다. 권리금은 법으로 보호 받을 수 없는 관습일 뿐이라는 점을 파고든 유통업체 앞에서 L씨는 피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이다.

권리금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우리나라만의 관습이다. 하지만 이제 이 관습은 창업자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아울러 권리금의 가치가 정당한지를 계량할 객관적 제도나 장치도 전무해 이에 따른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문제는 수많은 퇴직자, 창업자들이 권리금과 관련한 사고로 길거리에 나앉고 있는데도 정부 당국은 그저 팔짱만 끼고 있다는 점이다.

권리금이라는 관습이 없는 외국에서는 점포나 비즈니스 권리를 거래할 때 매도자와 매수자를 대신하는 변호사가 나서는 게 보통이다. 변호사와 거래자들은 해당 점포의 납세실적을 바탕으로 비즈니스의 가치를 계량해 거래 액수를 산정한다. 세금을 많이 낸 점포라면 영업이 잘 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그 가치가 올라가고, 세금을 적게 냈다면 점포의 가격은 떨어진다. 주먹구구식 권리금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 비해 거래가 투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객관적 가치 계량할 제도 마련을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권리금이라는 관습을 하루아침에 없애 버릴 수도 없다.

이 관습을 없앨 경우 이미 권리금을 지불하고 영업 중인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자영업자와 창업자들이 권리금으로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이 문제를 언제까지나 방치할 수도 없다.

다른 일은 몰라도 부동산 문제만큼은 일가견이 있다는 정부이니만큼, 남은 집권기간 권리금 문제라도 해법을 찾아 국민 앞에 제시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고용대박'이 난 것도 모른 채 겨우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 못해 벼랑 끝에 몰려있는 서민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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