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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영감을 패션으로 승화시켰던 전설적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1936~2008)은 "패션은 엄밀한 의미에서 예술은 아니지만 '예술가'가 필요한 분야"라는 지론을 늘 강조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살아있는 패션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그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순수미술을 연구하는 학예실 외에 의상연구소(Costume Institute)를 별도로 두고 매년 대규모 패션 전시회를 열고 있다. 패션과 예술이 단순 협업을 넘어 유기적 조화로 진정한 하이브리드를 구현한 대규모 전시가 국내에서도 마련됐다. 오는 26일부터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옛 로댕갤러리)에서 열리는 '패션 인투 아트(Fashion into Art)'전. 전시 기획자가 "작업 경향으로 볼 때 서로 잘 어울린다"고 판단한 미술가 15명과 패션 디자이너 15명을 짝지어 서로에게 받은 영감을 작품으로 표현한 자리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오토바이 서킷(경주장)을 본 뜬 패션쇼 무대가 펼쳐진다. 최근 전시에서"고전 조각의 가치를 현대적 물건에서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오토바이 토르소(torso)를 선보였던 조각가 권오상의 작품이다. 젊은 디자이너 한상혁과 손 잡은 권오상은 자신의 조각과 같은 질감의 오토바이용 의상을 제작해 이를 입은 모델이 무대를 누빈다. 현란한 색감과 구성력이 돋보이는 홍경택의 작품 '연필'을 본 디자이너 루비나는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연필로 니트를 직조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루비나의 작업실에서 수많은 재봉실을 본 홍경택은 이를 벽면 설치작품으로 옮긴 다음 뻗어나온 실이 새로운 옷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연출했다. '새 옷'이라는 결과물 이전에 예술가와 디자이너가 생각을 주고받으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과정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디자이너 손정완과 협업한 현대미술가 김기라는 17~18세기 서적의 도판 이미지를 차용해 상업자본주의를 지적한 자신의 벽화 작업 위에 각자 작품세계의 원천을 보여주는 드로잉들을 배치했다.'골드 크리스탈'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는 장식장 설치작품 '시선의 경계들'에는 손정완이 제작한 미니어처 의상과 함께 동화적 환상과 상상력을 구현을 다양한 오브제를 채워 넣었다. 이외에도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이용백은 영상작품 '앤젤 솔저'를 검은 수조에 투사했고 그와 짝을 이룬 디자이너 한혜자는 대조적인 하얀 꽃과 순백의 드레스를 띄워 극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시퀸'작업으로 유명한 노상균에게 영감을 얻은 디자이너 지춘희는 같은 재료로 유려하고 우아한 금빛 의상을 만들었고 디자이너 이상봉과 머리를 맞댄 박승모는 석고 마네킹에 철사를 돌돌 감아 의상을 제작했다.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드레스가 사라지기도 하는 배준성의 렌티큘러 작품과 정구호의 움직이는 스커트, 디자이너 서상영이 선택한 색상을 적용해'천 작업'을 시도한 박미나의 신작, 사라져 버릴 비누로 유물을 만드는 신미경이 빚은 문영희의 드레스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미술가 김남표ㆍ김지민ㆍ이이남ㆍ지용호ㆍ천성명ㆍ최원준과 디자이너 김재현ㆍ박춘무ㆍ설윤형ㆍ스티브&요니ㆍ진태옥 등이 참여했다.'보그코리아'의 창간 15주년 기념전으로 8월13일까지 계속된다. 입장료 3,000원. (02)510-4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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